[박태원]박태원연구
- 최초 등록일
- 2005.11.30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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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태원에 대한 연구발표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근대 속의 박태원
2) 작가연보(참고 : 새미 작가론총서2 박태원)
3) 구인회(참고 :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반성과 새로운 모색, 새미
4) 박태원의 작품세계(참고 : 새미 작가론총서 2 박태원)
3. 결론
본문내용
(1) 1930년대 구인회의 의의
일제의 탄압과 카프문학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창작되어 근대문학의 폭과 깊이의 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문학(예술)에 있어서의 ‘근대성’-문학적 자율성-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며, 구인회(九人會)는 당시의 바로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고 이끌어 온 실질적인 주체라 할 수 있다.
(2) 구인회는 ‘정체불명의 단체?’
구인회가 스스로 단체의 이름을 내걸고 했던 활동을 살펴보면, 1933년 8월 15일 창립하여 두 번의 공개 문학 강연회를 개최하고 40페이지에도 채 못 미치는 기관지를 남겼다는 사실만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독자적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학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밝혀줄 특정한 문학 이념이나 주장을 내걸지도 않았다. 더욱이 문제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구성원들의 문학적 경향이 하나의 범주로 묶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를 밝혀 보자면 다음과 같다. 구인회라는 조직을 구성한 작가 개개인의 문단적 위치가 상대적으로 매우 컸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특징이 단지 구인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단층』의 경우에도 창간 취지나 편집 동향을 엿볼 수 있는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작품만을 수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구인회의 특징 때문인지 기존(많은 시간이 지난 이야기겠지만) 구인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곱지 않았다. 나의 기억만 보더라도 얼마 전 다른 수업 레포트를 할 때 구인회를 다루었었는데 그 때 받았던 느낌은 위의 소제목과 같았으니 말이다. 단순한 ‘사교집단’이나 카프에 반대했던 ‘모더니즘적 경향을 추구했던 작가들’등의 평가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3) ‘문학적 場’(이상과 박태원이 구인회를 통해 문학을 완성하게 된다던데...)
많은 구인회 성원 중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이상과 박태원의 경우, 그들의 문학적 완성이 구인회 가입 이후라는 실제적 변모양상을 감안한다면 정치적 성향이 강한 문학 조직으로서의 힘이 이들 각각을 추동해 내었음을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