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물론사학 (마르크스주의 사학) - 백남운, 이청원, 전석담
- 최초 등록일
- 2006.05.19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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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물론사학`에 대해 저희 조 3명이 뭉쳐 쓴 레포트 자료 입니다.
목차와 본문요약을 보시면 더 확실히 내용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ⅰ. 백남운
ⅱ. 이청원
ⅲ. 전석담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1920년대부터 발달하게 된 민족사학은 유심론사학과 문화사학의 방법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식민지 사회문제에 대한 역사적 해답을 얻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풍미하던 식민사학에 대응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보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민족사학에는 주요한 2가지 과제를 가지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역사학의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 다양하고 광범위한 방법론적 개발을 통해 학문을 발달시켜야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에 ‘신흥사학’이라고 하는 유물론사학에 의해 이 문제들은 해결된다. 1933년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가 출간되면서 크게 주목받은 유물사론은 통사체제로 서술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의 방법론을 다양하게 하였다. 여기서는 유물론사학이 일어나면서 종래의 유심론사학과 문화사학에 맞추어 새로운 문제가 여러 가지로 제기되어 민족사학의 연구마당에 활발한 논의가 일어났던 논의와 그때까지 단군조선에서 비롯된 조선 역사의 일반인식을 넘어 원시사회를 설정함으로써 역사인식의 근본을 흔들어놓았던 논의를 백남운, 그와 쌍벽을 이룰 만한 유물론사학의 저술가 이청원, 1940년대의 전석담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Ⅱ. 본론
ⅰ. 백남운
a. 생애
백남운(白南雲1894 ~ 1979)은 전북 고창, 노론계열의 향반가 집안에서 태어나, 봉건적 주자가례와 한학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그는 1912년 수원농림학교에서 농학․경제학의 이론을 습득하면서 근대적인 학문을 접하게 되었으며, 조선 농업의 기본문제와 민족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 그 후 동경고등학업학교에 입학하면서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을 일제를 타파하고 민족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이념으로써 유물사관을 자신의 학문관으로 정립하고, 나아가 민족적 현실의 극복에 기여할 수 있는 ‘조선연구’의 진흥과 ‘조선사회경제사’의 체계화를 필생의 실천연구과제로 삼았다.
또한 그는 조선인민당의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북한에 잔류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가담하였다. 이후 그는 북한 교육상, 과학원 원장, 최고인민회의 의장, 조선전선 의장 등 주로 행정관료직과 원로직을 역임하다 1979년 6월에 사망하였다.
참고 자료
박광순 옮김,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1999, 범우사.
방기중 『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 1992, 역사비평사.
조동걸 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下)』, 1994, 창작과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