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 최초 등록일
- 2006.11.09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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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야부키 스스무. 신준수 역. 역사넷 2006.05.15
서평입니다.
목차
1. 단순한 풀이법
2. 수성의 리더십
3. 감상
본문내용
어떤 문제를 단순하게 풀기 위해서는 복잡한 풀이법을 사용하면 쉬워진다. 마오쩌둥에 대한 풀이법은 이런 거다. 1949년을 기점으로 그 전을 혁명의 시기로 그 이후를 건설의 시기로 나눈다. 혁명의 시기는 긍정, 건설의 시기는 부정하는 평가를 한다.
마오쩌둥은 혁명의 시기에 극좌를 비판했다. 이는 혁명의 현실에 적합했다. 위대한 지도자의 시기였고 소련으로 치면 레닌의 시기다. 하지만 건설의 시기에 선 마오쩌둥을 동지를 적으로, 현실론을 자본주의로 비판했다. 현실보다는 주관적 이상에 치우쳐 정치를 도덕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스탈린, 중국의 황제가 되었다.
‘황제를 말에서 끌어내리는 기개를 가지라’고 주장했지만 신민은 마오쩌둥을 황제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지적한다. ‘황제 앞에서 거짓을 말하고 마음과 다르게 말하는 것은 개인의 품성이 아니라 더 중요한 사회제도’이다. 이는 유태인 박멸에 관해 나찌를 응원한 독일국민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이른 바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혼자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꺼린다. 함께라면 빨간 신호등도 무섭지 않은 법이다.
야인 펑더화이는 건설중인 마오쩌둥을 평했다. ‘주석은 혁명과 건설의 승리에 의해 머리가 오만해졌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으로 대약진의 실패를 확대 재생산한 셈이다.
계속된 패착에 대해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이 어물쩡하는 바람에 우리가 이득을 본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마오쩌둥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마오쩌둥의 건설 오류는 분명한 듯하다. 또한 이후 등장한 덩샤오핑의 개혁은 건설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다.
참고 자료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야부키 스스무. 신준수 역. 역사넷 200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