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회화
- 최초 등록일
- 2006.11.11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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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적을 통해 분석한 레포트입니다. ^^
(인터넷 복사글 아닙니다)
목차
[서론]
⑴일반 회화의 의의
⑵한국 회화사상의 경기도
[본론]
⑴고려
⑵일반회화
⑶고려회화
⑷이제현의<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결론]
⑴회화의 보존사의 문제점
⑵개선 방안
본문내용
고려 회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고대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고분벽화보다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상화(鑑賞畫)가 실용적 목적의 회화 이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감상화의 전통이 조선시대로 이어져 그 시대 회화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려시대의 회화는 고대 문화적 측면과 근세 문화적 측면을 함께 갖추고 있다. 말하자면 중세적 특징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고려시대는 회화의 수집 및 보존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왕실을 중심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회화를 수집하고 보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왕실을 중심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회화를 수집하고 보관과 관리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대에도 고신라 말기에 세워진, 회화를 관장하는 기구인 채전(彩典)과 이를 계승한 통일신라의 전채서 등의 예에서 짐작되듯이 왕실에서 회화를 수집하고 관리했을 것이 확실시되나 그 구체적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반면에 고려시대에는 회화를 각별히 중요시했고 보존에도 철저하였음을 기록들을 통해 확인된다.
먼저 고려가 회화를 얼마나 중시했는가 하는 것은『고려사』권 122의 열전35,방기편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 최고의 화가 이녕에 관한 기록에서 잘 드러난다. 즉 명종(明宗:재위 1170~1197)이 이녕의 손자이자 이광필의 아들을 종9품의 무관직인 대정에 봉하려 했으나 정언 최기후가 고집을 부리며 서명을 하지 않자 왕이 그를 불러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 혼자만이 이 광필이 우리 나라를 빛나게 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광필이 아니면 삼한(三韓:우리 나라)의 도화는 장차 끊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자 최기후가 드디어 서명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을 보면 당시 고려의 왕이나 왕실이 얼마나 회화와 화가를 중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