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국공합작과 그 의의
- 최초 등록일
- 2006.11.19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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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세기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제 2차 국공합작과 그 의의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중국공산당의 통일전선전략 변화
1. 日本의 침략과 재야의 항일 주장
2. 코민테른 7차 대회와 통일전선전략의 변화
3. 반장항일에서 핍장항일(逼蔣抗日)로 변화
Ⅲ. 항일민족통일전선의 성립
1. 서안사변
2. 7․7사변과 제2차 국․공 합작
Ⅳ. 제 2차 국․공 합작의 의의
Ⅴ. 결 론
본문내용
제 1 차 국․공 합작의 결렬과 그 후 북벌과 남경정부의 성립에서부터 서안 사변에 이르기 까지 중국대륙은 혼란한 양상을 거듭하게 된다.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은 처음부터 이데올로기적 사상과 그 방법에서까지 전혀 다른 노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갈등은 당연하다고 보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당 정부는 대외적인 지도적 인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부패로 인해 실망을 보여주었고 공산당은 당시 중국 사회의 개혁을 주도할 만한 세력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항일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1938년 5월에 모택동은 ‘지구전론’을 발표하고 항일전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망하였다. 항일전쟁의 1단계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일본이 속전속결을 꾀하면서 중국전역에서 일대 공세를 취할 것이지만, 일본의 경제적 군사적 한계로 말미암아 중국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중일전쟁은 2단계의 전략적 대치국면을 유지하다가 궁극적으로 제3단계, 즉 실지회복과 반격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장개석도 항일 전쟁이 지구전의 성격을 띨 것이고, 초기단계에서 일본의 압도적인 우세한 군사력으로 말미암아 중국의 상당부분이 일본군의 점령 하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는 모택동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바탕으로 장기전을 전개하면, 마침내 중국은 승리할 수 있다고 예상하였다. 사실 장개석과 모택동이 예상한 것처럼 중일전쟁의 초기단계(1937~1938)에는 일본이 압도적인 군사적 우세를 유지하면서 신속하게 중국의 주요 도시와 연해안 지방을 점령하지만, 1939년 이후 1942년까지 중일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대치국면을 유지하였다.
참고 자료
김희영,『이야기 중국사3』, 청아출판사, 2002
서진영,『중국혁명사』, 한울아카데미, 2002
신승하,『중국사』, 대한교과서, 1998
최석로,『다큐멘터리 중국현대사』, 서문장,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