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종묘제례
- 최초 등록일
- 2006.12.10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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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해마다 5월 첫째 일요일이 되면 전국에 흩어져 살던 전주 이씨들이 별로 소문도 없이 한 곳에 조용히 모여 하나의 아주 엄숙한 의식에 자리를 같이 한 뒤 다시 살던곳으로 흩어진다. 이 의식이 바로 종묘 대제(宗廟大祭)이다. 원래 이 제사는 조선시대까지는 나라에서 치르던 제사였는데 왕조의 막이 내리고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조선의 왕가 후손들인 전주 이씨의 모임인 대동조약원이 이 행사를 맡아 다시 치르고 있다.
사묘의 건립은 유교의 조상숭배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은 죽은 조상의 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백을 모시는 무덤을 만들어 조상을 기리도록 하였다. 특히 유교에서는 사당에 죽은 조상의 혼을 신주(神主)로 받들어 제례를 올리고 후손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이러한 제례를 행하기 위해 형성된 사묘건축은 유교문화가 지향하는 이념과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종묘대제는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에도 나라에서 가장 중요시한 국가적인 제사였다. 종묘대제는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고 돌아가신 임금께 올리는 제사였으므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제사로 이보다 더 높은 격식을 갖는 제사는 왕조시대에는 있을 수 없었다. 종묘의 제사가 그처럼 최고의 격식을 갖는 것이었던 만큼 종묘 자체도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중요한 시설로 꼽히었다.
종묘와 사직은 그 제도가 고대 중국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모두 예(禮)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예란 사람이 사는 기본 법칙이며 국가의 질서도 모두 이 예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예는 다섯 가지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으뜸은 제사를 지내는 길례이며, 그중 종묘와 사직의 제사는 길례중에서도 으뜸인 대사였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중국의 이러한 예제를 수용하여 통치 질서의 방편으로 삼아왔다. 따라서 역대 왕조는 종묘와 사직을 가장 중요한 제사의 대상으로 모셨고 그 시설을 만들고 지키는데도 각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다. 우리나라의 종묘와 사직의 기본 제도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제도를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산이 다르고, 물이 다르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의 심성도 달라져,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종묘와 사직은 중국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우리 고유의 양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최고의 격식으로 치러진 종묘제례는 건축적 양식에서도 그에 걸맞는 최고의 격식이 요구되었다. 이를 위해 당시대 최고의 장인들이 이 건물을 만드는데 무수한 공을 들였으며, 유지되었다.
참고 자료
종묘와 사직, 김동욱, 대원사, 1990
궁궐·유교건축, 이상해, 방일영문화재단, 1990
新 궁궐기행 종묘의 건축과 역사 읽기, 이덕수, 대원사, 2004
세계문화유산 종묘 이야기, 지두환, 집문당,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