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19~20세기 동남아시아의 사회운동사
- 최초 등록일
- 2006.12.14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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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20세기 동남아시아의 사회운동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민족주의
일본의 동남아시아 식민제국
동남아시아의 독립
동남아시아의 후식민지시대
아세안의 성립
제 3차 인도차이나 전쟁
민주주의의 승리
결론
본문내용
20세기가 시작될 때 까지 동남아시아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동남아시아라는 용어는 태평양전쟁기에 실질적으로 사용되었다. 1943년 8월 동남아시아사령부가 창설되었으나 이 사령부의 임무는 한정되어 있었으며, 1945년 7월 포츠담 회의에서 관할구역이 확대되었으나 동남아시아 전체는 아니었고, 1946년 11월 동남아시아사령부가 해체되었을 때도 동남아시아의 범위에 대한 견해는 일치하지 않았다.
동남아시아는 20세기 중 단지 지난 4반세기 동안에야 겨우 지정학적 응집력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 응집력은 1967년 8월 아세안(ASEAN)의 활동을 통해 나타났다. 그러나 미얀마와 인도차이나 3국의 경우 1990년 초 냉전상황이 종식된 뒤에 아세안의 지역적 자격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후 1995년 7월 베트남은 아세안의 첫 번째 공산주의 회원국이 되었다.
동남아시아의 민족주의
유럽의 식민지배는 동남아시아의 전통사회를 동요시키고 변화시켰다. 예를 들면 왕권폐지라든가, 식민정부기구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식민주의는 플랜테이션 농업이나 채취산업을 촉진시켜 식민지에 영향을 미쳤으며 식민지 본국의 경제는 그들의 제품과 열대 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이익을 얻었다. 이러한 형태의 경제개발에는 중국 남부로부터 노동자 이주가 뒤따랐고 유입된 노동자들에 의해 또다시 경제개발이 촉진되었다. 이주민들은 노동계층과 경제적 중간계층을 채움으로써 식민지 경제구도행정에 공헌했으며, 그 결과 현지민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민족주의는 식민지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현지 엘리트를 키우기 위한 교육 확대에 의해서도 촉진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