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셔와 피카소를 통해 살펴보는 에피스테메의 한정성에 대한 탐구
- 최초 등록일
- 2007.03.17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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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대학교 사고와 표현 수업시간에 제출했던 레포트입니다. 이 글로 교수님께 글을 쓰는 센스가 날카롭다는 평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네이버 이벤트에서 이은결씨가 한 질문에 답변하여 상품권도 받았구요. 에피스테메라고 되어있지만 기실 에피스테메라는 용어보다는 편견이라고 보는 쪽이 어울릴 듯 합니다.
목차
M.C. Escher
Pablo Picasso
본문내용
M.C. Escher
에셔의 그림은 잔혹합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일상의 세계를 그것도 너무나 이성적으로 그려냅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이성’을 도구로 그 ‘이성’을 배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의 기반이 뿌리채 뽑혀나갈 위기에 직면하게 되어 불안해지고, 불쾌해지고, 잔혹함을 느끼는 것이지요.
옆의 그림은 위와 아래라는 개념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줄을 내리고 있는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해보이네요. 그러나 딱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요. ‘당신들이 그렇게 믿는 이성으로 어디가 잘못됐는지 말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이죽거릴 에셔의 표정이 보이는 듯 하군요. 사각형 안쪽은 분명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조감(鳥瞰)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그 평면 윗쪽엔 하늘이 있고, 난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몸의 방향과, 오른 쪽에 있는 사람이 사다리를 타는 데서 난간과 그 위는 분명 풀밭이 그려진 아랫부분에 비해 윗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부터가 위이고 아래일까요? 공간은 일관성을 가져야 합니까? 그것 역시 하나의 에피스테메가 아닐까요. 이성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도구이며, 그러한 도구로 형성한 에피스테메 또한 얼마나 불완전한 생각입니까.
그림이란 2차원이고 현실은 3차원입니다. 어차피 2차원은 3차원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2차원은 3차원을 따라가는 것만이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은, 에피스테메 안의 세상만이 진실이라는 생각은, 도대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