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立憲)운동과 혁명(革命)운동
- 최초 등록일
- 2007.11.22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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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사 관련 레포트로 A+ 받은 것입니다.
청말의 입헌운동과 개혁운동에 관한 것으로 흐름과 주요사건 위주로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입헌(立憲)운동과 혁명(革命)운동
1. 보황운동(保皇運動)과 청 말의 개혁
2. 국내 혁명사조의 확산
3. 입헌 운동의 발전
4. 혁명파와 입헌파의 논쟁
5. 청의 예비입헌
6. 자의국(諮議局)과 자정원(資政院)의 성립〜 황족내각(皇族內閣)의 성립
본문내용
입헌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어나가자 청나라 정부는 혁명세력을 소멸시키고 황실의 지위를 헌법으로 보장받을 속셈과 시간을 벌어 민심을 완화시키려고 1905년 6월 5대신(大臣)을 일본과 유럽에 보내 각국의 헌정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이들이 귀국하여 입헌국 군주의 신성불가침 등 이점을 주장하자 서태후는 이를 받아들이고 1906년 9월에 헌정을 예비한다고 발표하고 입헌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1906년 예비입헌의 방침이 선포되자, 입헌파 신사층은 각지에서 예비입헌공회(豫備立憲公會), 헌정공회(憲政公會), 자치학사(自治學社), 헌정주비회(憲政籌備會) 등 입헌을 고취하는 단체를 조직하여 지역별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청정부의 조치가 늦어지고 혁명세력이 날로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입헌 단체가 연합하여 청원을 준비하게 되었다. 각지에서 청원이 이루어지고 청원서에 4만여 명이 서명하기에 이르자 청정에서도 1908년 9월에 흠정헌법대강(欽定憲法大綱)을 반포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두 23개조로 된 대강 가운데 군권은 지고무상의 권력이 보장된 조항만 14개조에 달하며 그 예비기간도 9년으로 되어있어 입헌파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청정은 적어도 9년 동안을 보장받겠다는 속셈이었다.
참고 자료
『이야기 중국사』, 조관희, 청아출판사
『중국사(하)』, 신승하, 대한교과서주식회사
『근대중국 : 개혁과 혁명』, 신승하, 대명출판사
『20세기의 중국』, 서울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