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회복운동
- 최초 등록일
- 2007.11.30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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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운동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의병전쟁의 전개와 성격
2. 계몽운동의 유형과 성격
3. 의열, 순국투쟁
본문내용
국권회복운동은 청일전쟁 이후 일제의 군사적 침략으로 반식민지상태가 되자 위정척사 계열의 지방유생이 주도한 의병투쟁으로부터 시작. 1904~5년 러일전쟁과 을사조약을 거치며 의병활동 재기, 동시에 개화지식인들은 여러 형태의 계몽운동 전개.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의병투쟁은 국민전쟁적인 성격을 띤 대일항전으로 확대됨.
1. 의병전쟁의 전개와 성격
전기의병-1894년 일제의 경복궁 점령사건(갑오변란)을 시발로 하여 경술국치 후 독립군으로 전환하기까지 무장투쟁 전개. 1894년 안동의병으로 시작, 단발령 공포 후 전국으로 확대. 대표적으로 유인석의 제천의병, 김하락의 이천의병, 춘천, 강릉, 홍주, 진주, 장성 등. 1896년 10월경, 표면적으로 해산, 이들의 대부분은 무력에 의한 강제 해산 전까지 항전, 일부는 고종의 해산조칙을 거부-만주로 들어가 재기 항전 준비. 또 일부는 영학당 또는 활빈당에서 반침략·반봉건 투쟁 벌임. 이후 다수가 을사늑약 전후로 다시 항일투쟁 재개.
중기의병-러일전쟁과 한일의정서 등 일제에 항거하여 재기. 1904년 5월 허위의 이름으로 발표한 격문이 전국에 발송되면서 조짐이 보임. 1905년 9월 러일강화조약 조인 무렵부터 구체적인 투쟁상 보임. 대표적으로 원주와 제천의 의병. 을사늑약 이후 남한지역 산간지대 중심으로 투쟁 강화. 전기보다 전투능력 향상, 그러나 여전히 유생이나 전직 관료가 의병장. 농민들이 전투력의 주축, 포수나 활빈당이 합류하기도. 일제를 무력화시키려는 반침략 투쟁.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