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대한 오해와 그에 따른 침해- 유신체제
- 최초 등록일
- 2007.12.07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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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주주의에 대한 게념적 오해와 그에 따른 침해 사례를 적은 글입니다.
박정희의 유신정권 시절에 발생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민주주의의 의미
2.박정희의 유신체제와 인민혁명당 사건
3.민주주의의 대한 오해와 그에 따른 침해
4.참고자료
본문내용
- 민주주의의 대한 오해와 그에 따른 침해
나는 위에서 살펴본 두 가지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재정하며 인민의 권리를 탄압하였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명분상 받아들이고 한국의 국민에겐 서구식 민주주의가 부적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한국식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한국식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배경은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하나의 사상으로 여기지 않고 수단으로 여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어떤 문장에서도 드러나듯이 민주주의 도입을 통한 능률의 극대화를 꾀하였으나, 한국의 어려운 사정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능률의 극대화와 경제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식 민주주의란 거창한 이름아래 행해진 정치는 분명한 독재정치가 되었다.
국민의 직접선거법을 무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곳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게 하여 장기 집권을 하려 하였고 각종 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 조치’란 초법적 권리를 부여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강제적인 권력의 행사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국민들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저항을 시도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인민혁명당 사건’과 같은 일들이 벌어져 인권마저 탄압 당하였다.
-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인민혁명당 사건
유신정권[維新政權]
유신체제란 1971년 12월 6일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에서 1972년 말 유신헌법의 제안 및 선포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성립되었으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서거까지 지속되었던 국가의 제도 변형 및 강압적인 지배체제를 일컫는다.
유신체제의 가장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는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즉 3권위에 군림하는 지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쿠데타를 통해 도입한 유신헌법을 비롯한 정치제도는 기존의 의회 민주정치제도의 형식적인 기구가 부과했던 구조적인 제약을 말끔히 제거하고 자신의 개인통치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유신체제의 또 다른 제도적 특징은 관료적 동원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유신세력이 1972년 유신정권을 출범 시키면서 내세운 것은 ‘능률의 극대화’라는 구호였다.
유신체제는 박정희 1인 중심의 지배체제로 극도로 강압적이고 비상적인 지배를 수행하기 위한 일련의 국가제도의 변형이었고, 형식적 민주주의의 외피마저 포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종속적 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되는 경제적 사회적 모순의 발현을 억제하여 독점자본의 편향성을 강하게 지녔으며, 권력유지를 위하여 냉전체제의 약화 및 남북대화를 역이용하였고, 번번히 안보위기를 명분으로 이용한 것이었을 뿐이다.
참고 자료
두산백과사전, [유신체제]
김비환, [데모크라토피아를 향하여]
심포지움/학술토론회(http://www.kistory.or.kr), [1950년대 한국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파이낸셜 뉴스, [인혁당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