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양사 1편을 감상한 후 작성한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7.12.14
- 최종 저작일
- 2007.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영화 음양사 1편을 감상한 후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는 물론 헤이안 시대 남성과 여성의 전통의상을 함께 소개해 놓은 것으로 이 후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과 부족했던 부분까지 기록하였습니다.
목차
1. 영화 음양사 1편의 시대적 배경
- 음양사란
- 음양사가 생기게 된 원인
2.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의 특징과 배우 사진
- 아베노 세이메이
-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 도손
- 미츠무시 (세이메이의 시키가미)
- 스케히메
- 아노네
- 후지와라노 모토카타
3. 영화 속의 일본 문화
- 헤이안 시대 남자의 전통의상의 특징과 사진
- 束帯[そくたい]
- 直衣[のうし]
- 狩衣[かりぎぬ]
- 浅沓 [あさぐつ]
- 헤이안 시대 여성의 전통의상 특징과 사진
- 十二單[じゅうにひとえ]
- 小袿[こうちぎ]
- 긴 머리카락
- 기타
- 御簾
- 牛車
4. 영화를 본 후
- 일본인의 사상과 이를 엿볼 수 있는 영화
- 영화의 기술적인 면
- 기억나는 장면
- 세이메이 역의 노무라 만사이에 대해
본문내용
01 시대적 배경
음양사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헤이안(平安) 시대로 간무천황은 즉위하면서 율령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를 시작하여 불교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지방 정치 쇄신과 에조 정벌을 위한 기반 조성을 위해 수도를 나라의 서북쪽에 위치한 나가오카로 옮기기 원했다. 그런데 나가오카의 천도 공사 도중에 담당자인 후지와라 다네쓰구가 화살에 맞아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배후로 사와라 친왕이 지목된다. 사와라 친왕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억울하게 죽게 되고 그 후, 간무천황의 주위에는 안 좋은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음양사는 이에 대한 원인이 사와라 친왕의 저주라고 간무천황에게 올리게 되고 간무천황은 10년 만에 헤이안으로 천도를 시작한다.
사와라 친왕의 예처럼 이 시대 사람들은 질투, 원한 등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원령으로 생각하였고 이 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질병이나 죽음을 가져다주는 존재라 믿고 크게 무서워하였다.
이러한 원령이나 요괴 퇴치, 주술 등의 신비한 기술과 더불어 달력 작성, 천문관측, 제사, 미래 예언 등을 다루는「음양도(陰陽道)」라는 기술이 있었다. 음양도로 조정에 시중드는 자들을 「음양사(陰陽師)」라고 칭했다. 음양도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한 학문으로 처음에는 백제의 승려들과 박사들이 불교적인 분위기와 함께 일본에 전해 주었으며 7세기말부터는 음양도가 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된다.
특히 간무천황은 백제계인 어머니가 반대파를 몰아내고 즉위하여서 그 과정에 원령들이 많이 나왔다고 믿었다. 이러한 원령들은 국가적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존재였고 이를 없애기 위해 음양사들은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헤이안 시대에 음양도에 정통한 가문은 가모(賀茂) 가문과 아베(安部) 가문이었다. 음양사 가문으로 유명한 가모가의 가모 야스노리는 아들인 미쓰요리에게는 역도(曆道), 제자인 아베노 세이메이에게는 천문을 전수하였는데 이는 각 가문으로 세습화되었고 점차 형식화가 되어 미신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참고 자료
영화 음양사 1편
인터넷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