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말여초의 사회변동 - 한국 중세사의 성립
- 최초 등록일
- 2007.12.18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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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말여초의 사회변동 - 한국 중세사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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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안정된 고대사회는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말여초의 사회변동이고, 나말여초의 사회변동이라는 이행기를 거쳐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 전환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중세로 전환되는 과정은 3가지 측면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측면은 생산의 틀 측면이다. 고대사회는 노예제 사회라고 한다. 노예제 사회는 생산의 틀이 노예인 사회를 의미하며 이는 사람이 사람을 직접 지배하는 형태이다. 고대의 경우 삼국은 통일과정에서 생산의 틀인 노예를 획득했다. 이는 고대사회는 노예 확보를 위해 전쟁을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통일과정에서는 활발한 전쟁을 통해 노예공급이 수요에 충족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 후의 평화로 노예가 사회 밖에서 공급되지 못하여 부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왕의 자손이면 세대수에 제한 없이 진골이 되었으므로 진골 수는 계속 증가하여 진골에서 요구하는 부의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정된 부를 진골세력이 골고루 나눠 갖으며 재생산을 위해 노력한다면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가진 것에 대해 손해를 보면서 나눠가질 사람은 현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서로 부를 차지하기 위해 관직경쟁이 심화되었고, 무열왕직계로 이어져 오던 왕위계승의 원칙이 무너진 상태에서 진골 간의 다툼이 벌여졌다. 결국 신라 하대의 96각간의 난과 왕위계승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 왕위계승전에서 이기면 상대방의 부를 획득하지만, 패배는 곧 몰락을 의미한다. 또한 진골 내부에서 직계상속의 존중으로 직계와 방계의 차이가 커짐에 따라서 왕위계승전이 일어난 것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진골귀족출신이면 누구나 실력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위의 내용으로 볼 때, 생산의 틀이 한정됨으로써 이루어진 진골의 분열은 진골중심의 지배체제인 고대사회의 붕괴를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사회, 고려 즉, 중세사회는 사람이 사람을 직접 지배하는 노예제에서 토지를 매개로 한 지배의 형태로 전환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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