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와 문화재 관리 실태
- 최초 등록일
- 2008.02.13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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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숭례문 화재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재에 관리 실태를 조사해보고 작성 하였습니다.
목차
1. 국보 1호 사망
- 범행 동기
- 범행이후 행적
2. 국보 1호를 누가 불태웠는가
3. 국내 문화재들의 훼손 사례
-과거의 훼손 사례
-사극 드라마에 의한 훼손
-자연 재해에 의한 훼손
4. 무엇이 문제인가
-인력 감축으로 인한 사고
-관리 시스템 상의 문제
5. 다른 문화재는 안전한가?
-흥인지문
-해인사
-관덕정
6. 9.11 테러와 숭례문
본문내용
1. 국보 1호를 누가 불태웠는가
허술한 문화재 관리 시스템, 한심하기 짝이 없는 화재 대처 능력, 관련기관 간 책임 미루기 등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숭례문의 모습에 전 국민의 가슴도 숯덩이로 타들었다. 숭례문은 조선 첫 임금인 태조 때 건립돼 무려 610년을 버텨 온 자랑스러운 문화재. 참혹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의 치열한 시가전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문화유산이었다. 1907년 주변 성벽을 헐어낸 일제도 숭례문만은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런 숭례문이 어제 새벽 불에 타 무너지고 말았다. 낙산사, 창경궁 문정전, 화성 서장대 화재 등 심각한 경고음이 잇따랐는데도 우리는 국보 1호를 어이없게 화마(火魔)에 넘겨 주었다. 조상님께도 후손에게도 낯을 들기 어려운 부끄러운 참사가 바로 우리 세대에 벌어졌다. 2008년 2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 국치일(國恥日)’이다. 숭례문에는 제대로 된 화재 대응 매뉴얼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20여 가지 재난 유형별 대응 매뉴얼이 있지만 문화재 화재에 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숭례문은 매년 한 차례씩 실시되는 화재 훈련에서도 제외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관계자는 “숭례문의 경우 파워포인트로 도상훈련을 한 뒤 현장에 나가 문화재청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을 뿐”이라 고 말했다. 소방 당국과 문화재청은 우왕좌왕하며 불을 어떻게 끌지 결정하길 주저하다 화재 조기 진압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숭례문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서울 중구청은 “소방당국이 문화재청의 지휘를 받는 과정에서 의사 결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화재 발생 72분 뒤에야 직접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 진화 작업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주요 기둥에 불길이 침투하는 등 화재가 심하게 번짐에 따라 지붕 기와를 제거한 후 직접 살수 방식의 강경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수차례 건의했으나 화재 진압 결정을 내려 줄 문화재청 간부가 현장에 없어 공격적인 진압이 늦춰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거꾸로 소방당국의 어설픈 진화 작업과 관할 구청의 부실 관리를 탓하고 있다. 긴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숭례문의 비극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10일 밤 한 목격자는 ‘종이 쇼핑백을 든 50대 남자’를 방화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가 숭례문에 올라갔다 내려온 뒤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산 방면으로 사라졌다는 그 남자는 진범 여부와 상관없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다. 서울 도심의 숭례문이 불타 버렸다면 전국의 다른 문화재는 말할 것도 없다. 전기 조명을 밝히는 문화재에 화재 감지기·스프링클러 하나 설치하지 않은 무신경, 나무 값도 되지 않을 9500만원짜리 보험에 가입한 한심한 문화의식…. 우리 모두 이번 참사의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나라가 망해야만 국치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2월 10일, 문화 국치일의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 자료
joint news
조선일보
ytn news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