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전과 인본주의
- 최초 등록일
- 2008.02.15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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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 근정전에 구현된 인본주의 사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근정전과 인본주의
- 근정전은 어떤 건물인가
- 근정전 박석
- 향로
- 드무
- 근정전 처마의 그물
- 근정전 월대
- 월대의 해태 가족
- 임금의 목표는 홍익인간
- 돌사자의 인격
3. 후기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흔히 중국의 경우와 대비해서 우리 나라의 것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조선조의 선비들은 중국에 대해 사대의 예를 다했다 하여 우리가 무조건 중국의 것만을 선호하고 그것을 쫓은 줄만 안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목조 건축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외형상으로는 둘 다 나무로 짓고 기와를 얹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건물을 세우는데 작용한 조형의식은 두 나라간에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기술들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나라의 기술이고 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사이사이에 중국의 경우와 비교를 하며 우리의 개성을 부각시켜보려 한다.
2. 근정전과 인본주의
- 근정전(勤政殿)은 어떤 건물인가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다. 대례를 거행하고 조회를 열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정도전이 각 전각의 이름을 지으면서 근정전으로 명명한 이유를 설명했다.
천하의 모든 일은 근면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는 것이 이치이므로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하고, 나태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 일을 게을리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에서 근정(勤政)이라 하였다.
정도전의 이러한 진언은 매우 심각하며 왕의 처신을 훈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금인들 대통령에게 저토록 대담하게 명분을 따르라고 강조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요즘 정국의 혼란상황에서 문득 든다.
임진왜란 때 불이 나서 소진된 이후, 중건해서 옛 모습을 되찾자는 공론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경복궁은 창건하자마자 왕자의 난이 일어나 핏발이 섰던 곳이란 인식에서 얼른 찬동하지 않아 방치된 상태로 폐기되어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그의 아들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참고 자료
* 조선의 정궁 경복궁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옥
* 서울의 궁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