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니 전쟁과 남해에서 벌어진 한산도 해전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8.08.28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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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전쟁과 우리나라 전쟁 비교 리포트입니다
각주도 다되어있고,, 비교도 잘 되어있습니다
목차
Ⅱ. 임진왜란의 배경
Ⅲ. 포에니전쟁 배경
Ⅳ. 임진왜란 경과와 결과
1. 의병의 궐기와 조선군의 반격
2.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바다의 승리
3. 전쟁의 재개와 일본군 격퇴, 정유재란
Ⅴ. 포에니 전쟁의 경과와 결과
Ⅵ. 비교와 결론
Ⅶ. 참고문헌
본문내용
3. 전쟁의 재개와 일본군 격퇴, 정유재란
- 1593년 8월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은 이전의 농민군과는 달리 지원자 중에서 선발된 군사에게 급료를 지급하면서 계속 근무하게 하는 직업군인 제도였다. 이전보다 강력한 명령체계가 수립되고 조직적인 전투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부족하여 조정에서는 무너진 지방군을 속오군이라는 이름으로 재건하였다. 임진왜란과는 달리 히데요시의 의도와는 전혀다르게 전개되었다. 1차전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조선의 관군도 전열을 가다듬고 적극 대처하였다. 강적 앞에 동아시아 3국은 쇄국으로 접어들었다. 패배한 쪽은 영토를 내놓거나 돈을 지불하여야 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조선 조정은 향촌 사회의 안정과 회복이 긴급한 과제였다. 국방력 강화도 무리였지만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다른 대륙에 대비하여 재건은 이루어져야 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Ⅴ. 포에니 전쟁의 경과와 결과
-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4만 대군과 37마리의 코끼를 거느리고 육로로 이탈리아를 침공해 간 것이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프랑스의 용병 충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병 2만에 기병 6천밖에 남지 않았으나 2년에 걸쳐 남진한 끝에 기원전 216년 이탈리아 남부의 칸나에에 있는 로마의 병참기지를 격파했다. 로마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은 유명한 초승달 포진을 선보였다. 적진에 가장 가까운 가운데에는 약한부대, 양쪽 끝으로 갈수록 강한 부대, 맨 가장자리에는 강력한 기병이 포진한다. 로마의 보병들이 가운데로 쳐들어오자 중앙의 카르타고 군은 뒤로 물러나며 적을 안으로 끌어들여 로마군을 포위한다. 여기서 이탈리아 전역을 접수했다면 유럽 대신 북아프리카가 지중해 세계를 제패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이기훈(1997), 『전쟁으로보는 한국역사』, 지성사.
남경태(1998), 『인간의 역사를 바꾼 전쟁이야기』, 풀빛.
이광희(2006), 『세계역사를 뒤흔든 20가지 전쟁』, 씽크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