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별가
- 최초 등록일
- 2008.09.03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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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토별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토별가 우유(寓喩)의 공식
1. 풍자와 교훈의 사이
2. 수궁과 양계의 은유법
3. 주제의 두 가지 논의
4. 신재효 우의의 차별성
5. 양반주의와 주제의 우선순위
6. 서민관의 진실과 <토별가>의 위상
본문내용
Ⅴ. 토별가 우유(寓喩)의 공식
1. 풍자와 교훈의 사이
풍자니 교훈이니 하는 것은 작품에 따라서는 나우어 구별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일도양단으로 갈라서 구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그 못지않게 많지 않나 싶다. 이는 대개 어우러져 양면성을 띠기가 일쑤이다. <토별가>를 집중 유의하여 보면 주제로서의 풍자와 교훈 사이에 단정이 쉽지 않은 양속적(兩屬的) 국면이 눈에 띈다.
첫째, 신재효 <토별가>에 관한 한 ‘토끼 = 서민층’이라는 우의적 등식을 사양하고 다른 공식을 취용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한 일단의 상정이다. 둘째는 기존의 공식이 신재효 <토별가>에도 그대로 통용되었을 것이란 전제에서, 그 주제가 서민적 풍자주의를 지향하여 있다는 여타의 이본과는 분리해서 신본(申本)만큼 그 뜻하는 바의 비중과 방향이 다른 쪽, 말하자면 범윤리적 교훈주의에 놓였을 가능성에 대한 일단의 추론이다.
2. 수궁과 양계의 은유법
수중 용왕국이 중국을 상징하고, 산군과 토끼의 양계가 조선국을 나타낸 구도라고 할 것 같으면 보다 구체적으로 중국과 한국의 그 어떠한 시대를 염두에 둔 발안이겠는가 하는 문제가 새삼 대두되게 된다.
1) 원(元)과 고려
역사에서 살펴보면 서기 1344년은 중국(원)이 한국(고려)에 대한 전횡이 다른 어느 때보다 자심하였던 바 고려조정은 완전히 원제국의 간섭 하에 시달림을 당하던 정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만큼 분명한 사실로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수긍되는 구석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석연치 않은 느낌이 마저 없지 않다. 즉, 토간구득에 혈안이 된 용왕을 고려를 상대로 경제적 징구에 혈안이 된 원 왕실로 간주해 본다거나, 위맹 , 가혹하고 어리석은 산군은 원과 다름없이 수탈에만 급급해하던 고려 왕실로 각각 볼 수도 있겠지만 신재효가 <토별가>안에서 “자라의 장한 충성”한 마 그 자라를 아무러면 원제의 충성스런 사신으로 연상하였겠는가에 따른 회의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