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친족제도
- 최초 등록일
- 2008.11.20
- 최종 저작일
- 2008.1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의 친족제도의 자료에 기반하여 고려의 친족제도를 연구한 자료입니다.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이"란 책을 중심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1.친족제도 관련 분야의 연구
2. 상속제도
3. 가족․친족규모
4. 친족의 조직 원리와 형태에 대한 연구
5.부계 친족집단을 전제한 연구
6. 친족조직 원리 및 친족형태에 대한 실증적 연구
Ⅲ.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친족제도 연구는 크게 두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친족제도와 관련된 현상들을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연구이다. 이 분야의 연구는 매우 다양하여 주제를 한정하기 어렵지만 대표적으로 부처(夫妻) 형태, 상속제도, 가족․친족규모 등에 관한 연구를 꼽을 수 있다.
둘째는 친족의 조직원리를 규명하는 연구로 친족형태에 대한 연구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당시의 사회상을 거시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로 귀결된다.
Ⅱ.본론
1.친족제도 관련 분야의 연구
⑴부처(夫妻)의 형태
조선시기의 부처 형태는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일처다첩제(一妻多妾制)였다. 조선 태종 때 처첩을 분간하고 적서(嫡庶)를 구별하게 한 이래 처는 1명만 인정되었고, 첩 소생인 서얼(庶孼)은 처 소생인 적자에 비해 사회적으로 현격한 차별대우를 받았다. 이에 반해 고려시기의 부처 형태에 대한 연구에서 첩제도는 매우 적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첩을 얻는 것을 예외적인 행위이며, 첩제도를 보편적인 부처 형태로 설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견해가 일치하는 듯하다. 이렇듯 고려시기의 부처 형태에 대한 주요 쟁점은 일부다처제설과 일부일처제설이다. 그럼 두 논쟁의 근거를 차례대로 살펴보도록하자.
①일부다처제설
한 왕이 여러왕후를 둔 왕실의 사례로, “부유한 집은 서너 명의 처를 얻는다”라고 한 고려전기 중국 사신의 기록과 “고려말에 두세 명의 처를 거느리는 것이 풍속이 되었다”라는 『태종실록』의 기록은 다처제설의 중요한 논거가 된다. 또한 사료에 나타나는 ‘후취(後娶)’라는 표현을 전처가 생존한 상태에서 후처를 맞아들인 것으로 보았다.
참고 자료
역사비평편집위원회, 《한국전근대사의 주요쟁점》, 역사비평사, 200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8》
〈고려의 호적은 어떻게 만들었나〉, 채웅석,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