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역사』요약과 서평
- 최초 등록일
- 2009.01.31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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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의 『미래를 여는 역사』를 요약하고 서평을 작성한 리포트다.
목차
서장:) 개항 이전의 삼국
제1장:) 개항과 근대화
제2장:)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한중 양국의 저항
제3장:) 침략 전쟁과 민중의 피해
제4장:)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동아시아
종장:)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하여
느낀 점:)
문제점 및 보강해야 할 점:)
본문내용
한․중․일의 관계
근대 이전의 삼국의 관계는 공식적인 외교와 더불어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발했던 관계였다. 특히 중국과 주변 나라와의 관계는 조공관계로서, 중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6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내란을 정리하고 권력을 장악했고, 더 나아가 중국 대륙 정복의 야심을 가지고 조선을 두 차례 침략했다. 그에 대항에 조선의 민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고, 조선 수군도 반격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명의 원조군도 함께 일본에 대항했다. 조선과 일본 간의 교류는 임진왜란이 끝나고서야 재개 되었고, 통신사라는 조선의 사절단이 일본에 파견되었다. 한편, 중국 동북 지역의 여진족이 후금을 건국하고 명과 조선을 침략했다. 세력이 커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중국 정통 왕조를 자처했다. 조선은 명과의 대의명분을 중시하여 청에 대한 북벌론을 전개했다.
일본의 에도막부 초기에는 대외 무역이 활발했으나 기독교 세력이 커지자 외교를 제한했다. 조선은 부산에 왜관을 설치하여 일본과의 무역을 지속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유럽열강이 동아시아를 압박하고, 세 나라는 통상을 거부했다.
삼국의 국내 상황
일본의 정치 중심지는 에도(지금의 도쿄), 도쿠가와 막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이 권력을 장악했으며 비록 천황이 있긴 하였으나 정치적 권한은 없었다. 영토는 쇼군이 직접 지배하는 지역과 그 밖의 영지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나뉘었다. 영지는 무사계급으로서 행정권, 사법권, 징세권을 가진 봉건 영주가 통치하였다. 농민은 납세의 의무를 지녔고, 연공(세금)은 무사들의 연명 수단이었다. 일본의 사회적 구조는 상층의 무사계급과 하층의 서민계급으로 구성되었다.
19세기 후반 경제력을 가진 상인이나 농민의 지위가 급부상했다. 반명 막부와 다이묘의 재정은 열악해졌다. 몰락한 농민과 부자 농민 다이묘의 과중한 세금 부과에 못 이긴 농민들은 잇키(농민봉기)를 일으켰다. 일본은 대내적으로는 농민봉기, 대외적으로는 서양 열강들의 개국 요구 압박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참고 자료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미래를 여는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