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 산책 살롱
- 최초 등록일
- 2009.01.31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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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 산책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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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함양하면서 지적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17~18세기 살롱의 출입 문인
「물랑가의 살롱에서」 “로트렉”
가스케 : “살롱은 아카데미 프랑세즈 이상으로 풍속을 순화하고 언어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장 데스프리 , 오네트 장
: 화술, 문장, 태도, 교양, 재치가 뛰어난 사람들을 일컫는다. 재사라고도 한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사교몬화와 토론문화를 배울수 있었다.
자연스레 살롱은 일종의 사교장이자 지성인들이 만든 사상의 거래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식사후 소화시키는 시간에 살롱에 갔다. 살롱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랑부이에 부인의 살롱은 왕족과 영주들의 저택, 부르주아 계급의 저택에서까지도 모방되고 열리었다. 그러한 유행은 17세기 시골에서까지 퍼지게 되었다.
살롱은 프랑스 사회에서 사교의 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언어, 풍속, 매너, 감성을 세련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30년동안 프랑스의 양식과 매너를 대표하는 학교로 성장했다.
18세기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여성들이 공적영역에 있는 남성들과 함께 살롱과 카페를 통하여 대화와 토론의 광장을 활성화했다.
이광주- 「유럽사회 풍속산책」 서울-까치 1992. p36
파리에는 철학자임을 자처하는 인사들이 무려 2천명을 넘었고 살로의 수도 800여개가 넘었다. 1750년을 기점으로 전반기와 후반기로 살롱의 역사는 나누어 볼수 있다.
1750년 전 랑부이에 부인의 문예살롱은 18세기 초반까지 오네트 옴과 프레시외즈들 사이에 근대사상과 문화를 꽃피우게 하였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레스피나스양의 살롱, 조프랭부인의 살롱, 네케르 부인의 살롱등 중세부터 귀족출신의 분위기를 없애기 시작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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