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음식문화
- 최초 등록일
- 2009.05.09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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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장 공동의 언어를 위한 기초
기근의 시대
5~6세기 유럽인들이 단지 초근목피에 의존하고, 심할 경우 식인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성급히 단정해서는 안된다.물론 비극의 순간- 홍수 등으로 인한 흉작, 비적때의 노략질 등-도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점잖은 식사 예절로 정상적인 음식 소비를 했을 것이다.
고대에는 비경작지를 인간 문명 세계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보고 이런 곳들을 생산활동의 영역으로부터 배제하려고 했었다. 5세기와 6세기 사이 새로운 생산.문화 모델-숲, 벌판 ,늪지등 자원의 조직적 이용 -이 확립되면서 이런 태도에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고대세계로부터 멀리 퍼져 온 문화적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목차
5장 기근의 세기
본문내용
18세기 유럽은 항상적인 영양 부족상태였다. 인구증가에 따른 음식수요의 증가는 결과적으로 농업 혁명을 야기시켰다. 휴경은 중단되고 목축과 곡물농업은 통합되었고 비료의 확보로 곡물 생산이 크게 늘었다. 이러한 기술혁신은 농업 자본주의의 시작이었다. 더 나아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이것은 산업 경제를 향한 첫 발걸음이기도 했다.
벼와 메밀은 하층민의 식량문제로 인해 재발견되었고 옥수수와 감자는 대단히 중요한 작물로 취급되었다. 이런 변화는 문화적·과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작물들이 유럽인의 식사 방식을 바꾸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이 음식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유럽 음식체제의 다른 음식체제에 대한 문화적 용인, 즉 내적인 진화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초기 텃밭에 주로 경작되어 지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옥수수는 16세기 후반 들어서는 과세의 범주에 포함되게 된다. 지주들은 옥수수의 높은 생산성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했는데 농민들에게 옥수수 재배를 종용함으로써 농민의 식량을 확보하고 대신 밀과 같은 비싼 작물을 지대로 받아 소득을 축적했다. 이는 농민의 생활조건을 악화시켰고 농민들은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옥수수로 인해 단조로워진 식단은 펠라그라병을 유발했고 이 병은 궁핍의 상징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