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나는 특별히 동방 신학의 창조론에서, 사람이 하늘과 상응할 수 있는 바탕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창조의 까닭, 창조 이전 신의 영역, 창조의 힘, 창조의 결과 등을 사유해 보았다. 정교회 전통에서 창조에 관한 소중한 유산들은 우리에게 영성이 가능한 이유를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 고찰해보자.
목차
I. 들어가며
II. 머물며
1. 신과 무
1)어두움 속의 신
2) 무와 절대무
3)신과 무
2. 사랑 의지
1) 어두움 속에서 무로
2) 무에서 유로
3) 비존재에서 삼위일체로
3. 삼위일체
1) 삼위일체 이해
2) 삼위일체의 본성
3) 각 위의 두드러짐
4. 에너지
1) περιχωρησις
2) 영광의 옷
3) 창조 에너지
5. IMAGO DEI
1) 최상의 에너지
2) 본질 의지
3) 자유 의지
III. 나아가며
참고문헌
에필로그
본문내용
I. 들어가며
‘뿌리’를 보고 싶은 것이 동서를 막론한 철학의 주제가 아니었던가! 서양은 이를 위해 늘 ‘그 자체’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사유의 길을, 동양은 늘 사귐의 그물망 인정하고 체득하는 도덕의 길을 발전시켜왔다.
사람됨의 뿌리를 어찌 보고 싶지 않겠는가? 사람이 머리를 하늘에 두고 산다는 명제에서 뿌리의 방향을 밝히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인간이 하늘을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게 하는가? 왜 하늘이 우리의 본향이라고 지시되는가? 이러한 물음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대답되어져 왔다. 이러한 대답 중 한 가지가 창조론의 신학이다.
나는 특별히 동방 신학의 창조론에서, 사람이 하늘과 상응할 수 있는 바탕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창조의 까닭, 창조 이전 신의 영역, 창조의 힘, 창조의 결과 등을 사유해 보았다. 정교회 전통에서 창조에 관한 소중한 유산들은 우리에게 영성이 가능한 이유를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 고찰해보자.
II. 머물며
1. 신과 무
1) 어두움 속의 신
신에 대해서 사람은 과연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신에 대한 지식을 추구해 온 것이 신학의 과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알다시피, 신에 대한 앎의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길은 지식의 길이고 둘째의 길은 연합의 길이다. 지식의 길을 긍정 신학이라 칭하고, 연합의 길을 부정 신학이라 부른다. 서방 교회는 긍정의 길을 발전시켜왔고, 동방 교회는 연합의 길을 발전시켜왔다. 물론 두 길 모두를 서로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그러했다. 서방 교회는 신에 대해 사람이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말해야 하고, 전해야 한다는 언어적 당위를 고수하였다. 이에 반해 동방 교회는 신에 대해 사람이 알 수 없음에 깊은 깨달은 후 언어적 시도를 버렸다. 이로써 동방 교회는 성상(Icon)을 더 즐겨 사용했다. 따라서 서방 교회는 언어를 사제들이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며, 폭력을 행사하였다. 동방 교회는 성상을 내세움으로 보다 보편적인 신과의 연합을 제시했지만, 우상 숭배란 비방을 면치 못했다.
참고 자료
1. 블라디미르 로스끼 지음, 박노양 옮김, 동교회의 신비신학에 대하여, (한장사: 서울). 2003. p91, p145.
2. 성 아우구스티누스, 조호연, 김종흡 옮김, 하나님의 도성, (크리스챤 다이제스트:고양). 1998. 12권. 2.
3. 이정배 지음, 전위 토착신학 연구, (대한기독교서회: 강남). 2003. p100.
4. C. A. 반 퍼슨 지음, 손봉호, 강영안 옮김, 몸 영혼 정신, [포이에르바하] (서광사: 동대문). 1985. p68.
5. 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닛사의 그레고리우스] (기독교문서선교회: 서초). 2001. p249.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