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국사회-수구.개혁.혁명
- 최초 등록일
- 2009.11.18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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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중국사회-수구.개혁.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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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840년의 아편전쟁 이후 본격화된 서양문명의 충격은 중국에 보다 의미 있는 변화를 강요하였음에 틀림없으나 그것만이 변화의 요인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편전쟁 이후 일어난 중국의 변화는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중국 사회 자체 내의 변화와 서양에 의해 제공된 외래적 변화요인의 결합의 산물이었다. 이 변화들을 수구․개혁․혁명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로 분류하기에는 많은 오류들을 범할 수 있으며 이미 많은 전공 개설서에는 이렇게 분류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수구․개혁․혁명이라고 단정지어 분류하기보다는 어떻게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갔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양무운동(혹은 자강운동)은 태평천국과 제2차 아편전쟁 이후 중국에서 서양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최초의 지배층 주도의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양무운동 주도자들(증국번, 이홍장, 좌종당 등)의 개혁적인 성향은 서양 근대 과학 기술을 새로이 수용하여 중국과 서양을 절충하려고 했던 점에서 종전의 경세론과는 다르지만, 서양문물의 도입을 통해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점에서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 개혁세력은 외교적으로는 대체로 서양과의 협조체제를 유지하는 입장이었고, 북경조약은 중국이 서양을 형식상 대등한 관계로 공식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화제국의 세계적 보편성에 대한 환상을 깨뜨릴 수 없었던 수구-보수파에게 양무파의 외교 전략은 유화적으로 보이기 쉬웠고, 그러한 인식이 양무파의 외교정책에 대한 거센 반발로 표출되었다.
또한 이러한 갈등은 외교적 사안만이 아니라 개혁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둘러싸고도 전개되었는데 모든 것들이 지지 부진하였다.
참고 자료
신승하․유장근․장의식 공저, 『19세기 중국사회』,신서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