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의 정치
- 최초 등록일
- 2010.08.21
- 최종 저작일
- 2004.04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Ⅰ. 8·15해방과 정치활동
8·15해방은 민족의 주체적 역량과 자주적 힘에 의한 광복이었다기보다는 외부의 강대국 정치에 의하여 이루어진 민족해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민족해방의 성격은 해방이후 나타난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성향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과 정치세력들의 출현을 가져오게 하였다.
목차
Ⅰ. 8·15해방과 정치활동
Ⅱ. 보수우익의 형성과 정치성향
1. 한민당의 결성
2. 이승만과 독립촉성중앙협의회
3. 김구의 특별정치위원회
Ⅲ. 좌익의 조직구성
1.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노동당
2. 조선인민당
3.남조선신민당
Ⅳ.좌·우 합작운동
Ⅴ. 결론
본문내용
8·15해방은 민족의 주체적 역량과 자주적 힘에 의한 광복이었다기보다는 외부의 강대국 정치에 의하여 이루어진 민족해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민족해방의 성격은 해방이후 나타난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성향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과 정치세력들의 출현을 가져오게 하였다.
특히 해방정국 3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정치 세력들을 대체로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즉 정치세력을 이루고 있는 집단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과 정치노선에 따라 진보주의적 내지 급진적 성향을 가진 좌파세력과 온건적 내지 보수적 성향을 가진 우파세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좌파세력은 주로 노동자와 농민계급을 정치세력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사회구조의 전반적인 변화와 개혁을 원하고 있었다. 반면에 우파세력은 주로 지주와 자본가 계급이 정치세력의 중심이 되는 정치 사회의 건설을 통하여 기존의 지위와 권리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였다.
조금 더 세분화하자면 당시 남한의 정치지도자들은 대체로 이승만, 김구, 한민당 등으로 구성된 <우익>과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좌익>, 그리고 여운형, 김규식을 핵으로 하는 <중도>의 3개 세력으로 구분될 수 있다. 중도파 가운데서도 여운형은 중도 좌파, 김규식은 중도 우파로 분류된다. 이상의 국내 제 세력을 좌·우익으로 단순화하면 우익과 중도 우익을 통틀어 <범 우익>, 좌익과 중도좌익을 묶어 <범 좌익>으로 볼 수 있다. 우익세력 가운데 보수적 토착세력을 대표한 한민당이 <국내파 우익>이라면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이승만과 김구는 <해외파 우익>이다. 우익은 반탁과 반공에서 일치했으나 공산주의와의 관계설정과 정부수립 방식, 건국 주도권 등을 둘러싸고 견해가 갈렸었다.
이와 같이 해방 후 한국사회는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세력들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갈등이 극명하게 나타난 국가권력의 공백상태였다. 특히 해방 후 한국사회는 앞으로의 국가건설과 정치체제문제, 정치이데올로기문제, 계급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전체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극한 대립상태를 낳게 하였다. 정치세력들 간의 대립적 상황을 미·소의 강대국 정치의 힘의 논리와 정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들의 국가이익에 이용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국내외적인 상황은 한국사회의 분단주의를 가져다주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