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10.09.04
- 최종 저작일
- 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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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
16세기 종교개혁의 양대 기둥인 루터와 칼뱅은 그들이 치열하게 전개했던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 속에서도 자신의 침상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다. 종교전쟁의 많은 희생자들에 비해 혁명가답지 못한 죽음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임종을 지켜봐 주는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에게 추모를 받을 수 있고 최후의 순간에 위대했던 자신의 업적을 뒤돌아 볼 수 있는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살아서는 종교혁명가였지만 죽을 때는 목회자로서의 죽음을 맞이한 루터와 칼뱅이었다. 하지만 1531년, 스위스 카펠에서 이들과 같은 종교개혁가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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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6세기 종교개혁의 양대 기둥인 루터와 칼뱅은 그들이 치열하게 전개했던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 속에서도 자신의 침상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했다. 종교전쟁의 많은 희생자들에 비해 혁명가답지 못한 죽음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임종을 지켜봐 주는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에게 추모를 받을 수 있고 최후의 순간에 위대했던 자신의 업적을 뒤돌아 볼 수 있는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살아서는 종교혁명가였지만 죽을 때는 목회자로서의 죽음을 맞이한 루터와 칼뱅이었다. 하지만 1531년, 스위스 카펠에서 이들과 같은 종교개혁가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임종에는 종교개혁가를 찬미하는 추종자들도 없었으며 종교개혁가 자신도 임종의 순간 자신의 생을 뒤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 그가 죽은 곳은 전쟁터였고 그의 손에는 성경 대신에 한 자루의 칼이 쥐어져 있었을 뿐이다. 어째서 종교인이 칼을 들고 전쟁터 속에서 죽었을까? 그는 종교개혁가 이전에 목회자로써 본분을 다하며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이 목회자라고 인식했으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였겠지만 그는 목회자 이전에 개혁가였고 또한 한 도시를 이끌어가는 정치 리더였기 때문에 편안한 도시에서의 삶을 버리고 전쟁터로 달려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스위스의 위대한 종교개혁가 훌드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츠빙글리는 종교개혁자들 중에 가장 인문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사람이다. 그를 특징짓는 세가지 흐름이 있는데 애국주의, 스콜라주의, 인문주의라 말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도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에라스무스가 (反)이 아닌 반(半)펠라기우스적인 견해라는 것이 무엇인지와 그것에 츠빙글리가 반대를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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