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연’으로 역사적 이데올로기와 상상력 읽기- 상상력의 한계와 이데올로기와의 작용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12.12.23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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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말 2일 꼬박 매달려서 썼던 글입니다.
목차
1. 문제제기
2. 영화 ‘청연’에 대하여
3. 다른 시각으로 ‘청연’ 보기
4. 결론
본문내용
1. 문제제기
영화는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영화는 하나의 오락거리이며,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만 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입장이나, 이데올로기를 개입하지 말고 영화는 그 자체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즉 영화의 오락적인 성격을 강조하며, 영화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는 그 제작에 있어서 일정한 시각이 함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화 감상에서 그 시각을 읽어내고, 그를 비평하는 것이 감상의 주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사회적인 기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재구성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현실을 취사선택한다. 즉, 영화에는 ‘보여주고자 하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 략>
우리는 위의 논의를 통하여, 상상력과 이데올로기의 접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데올로기는 상상력의 발로를 만들고, 그 상상력은 또다시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상보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제시대에 꿈을 가진 개인의 모습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국권침탈을 원통해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닌자’를 예찬하는 박경원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는 다시 새로운 삶의 형태를 시각화하여 이데올로기를 보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구조는 영화를 더 이상 위락적 소비의 대상으로만 바라봐져서는 안될 것이며, 시각과 관점을 평가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일제시대’에 접근하는 우리의 접근법은 어떻게 다양화되어야 하며, 그를 둘러싼 논의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 되어야 하는 것인가. ‘청연’을 둘러싼 논의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영화를 둘러싼 논의가 정작 영화를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친일이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박경원이라는 인물 자체를 어떻게 표현했는가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박경원이라는 인물 자체를 공격하기에 바빴고, 반대로 ‘청연’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영화 내적인 요소(스토리나 연출, 편집)의 허점을 인정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공격과 광기에 의한 영화죽이기라고 호소하였다. 즉, 일제시대와 그와 결부된 민족주의적 감정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나 그 반대에 있는 사람들이나 건전한 논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