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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2.22
- 최종 저작일
-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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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민족해방과 해방운동
Ⅱ. 민족해방과 민족해방운동사
1. 제1기
2. 제2기
3. 제3기
Ⅲ. 민족해방과 여성문학
Ⅳ. 민족해방과 독일문학
Ⅴ. 민족해방과 베트남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민족해방과 해방운동
3·1운동 후의 민족독립운동은 좌우익 운동으로 선명히 분열되었고 우익세력의 일부가 절대독립론으로 이탈해 갔다. 그러나 비타협적 우익세력과 좌익세력은 독립운동 전선에서의 협동전선 내지 연합전선을 이루어서 그 전력을 강화하는 한편 해방 후에 수립할 민족국가의 체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합일점을 찾아갔다. 좌우익 세력의 협동전선은 먼저 1920년대 후반기의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 운동은 만주·중국지방의 독립운동 전선에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으나 국내에서는 신간회 운동으로 나타나서 약 5년간 노동운동·농민운동 및 학생운동을 효과적으로 지도하다가 일본의 탄압과 공산주의 운동의 극좌화로 해체되었다.
민족유일당 운동으로서의 신간회 운동이 실패한 후 국내에서의 민족운동은 점차 침체해갔다. 그러나 해외의 독립운동 전선, 특히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은 중일전쟁을 전후한 1930년대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좌우 세력의 연합전선을 지향해갔다. 이 시기의 연합전선은 먼저 조선민족혁명당의 성립에서 시작되어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이 연합한 전국연합진선협회를 성립시키고 임시정부가 연합내각으로 성립되었으며, 민족혁명당의 군사조직인 조선의용군이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과 합작했다. 이 연합전선 운동은 중국 안에서의 또 하나의 독립운동 세력인 연안의 조선독립동맹과도 어느 정도 연결을 맺고 국내 여운형(呂運亨)계의 전국동맹과도 연결되어 갈 전망이었으나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일본이 패망했다.
1930년대 후반기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전선에 일어나 이와 같은 민족연합전선은 독립운동 단체 사이의 행동상의 연합에 그치지 않고 광복 후에 수립할 민족국가의 성격에도 합일점에 도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독립당계와 민족혁명당계가 연합하여 성공시킨 전국연합진선협회는 해방 후에 건설할 민족국가 체제로서 민주공화국 정체(政體)와 토지 및 주요산업의 국유화정책을 혼합한 민주사회주의적 체제를 채택했다. 또 임시정부는 그것을 ‘건국강령’으로 확정했으며, 연안의 조선독립동맹도 역시 민주공화국 정치체제와 토지 및 주요 산업의 국유화 경제체제를 채택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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