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체제, 유신
- 최초 등록일
- 2013.02.28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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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61년 5월 16일, 대한민국 현대사를 한 순간에 뒤바꾸는 혁명이 발발하였다. 물론 당시 그 혁명의 참여자들에게는 여전히 혁명으로 기억되지만 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5.16 군사 쿠데타, 군사 반란으로 부르고 있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군을 통제하지 못한 장면 정부는 결국 집권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5.16 군사 쿠데타는 4.19 혁명으로 얻은 민주화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었으며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었다.
육군 소장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정권을 잡은 소장파 장교들은 쿠데타 성공 다음 날 혁명 7대 공약을 발표한다. 이 공약은 주 내용은 반공을 국시로 한 미국 등 우방 국가와의 동맹 강화, 민생고 해결, 민정 이양 약속 등이었다. 이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구성하는데,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입법, 사법, 행정을 초월하는 초헌법적 기관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민정 이양 약속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는 군에서 전역하고 1963년 민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여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 되어 유사 민간 통치로 이루어졌다. 1963년 출범한 박정희 정부는 수출 중심의 경제 정책 등으로 국민에게 호응을 받아 1967년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박정희와 민주 공화당은 압승이 거두게 된다. 당시 수출 중심의 경제 정책은 우리 경제의 성장에 큰 원동력이 되었지만 산업화에 따른 많은 폐해가 발생했다. 만 15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휴식 없이 노동을 하고, 한 줌 빛도 들어오지 않는 다락방에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으로 사회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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