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분원과 분원백자
- 최초 등록일
- 2013.09.11
- 최종 저작일
- 2009.05
- 33페이지/ MS 파워포인트
- 가격 3,000원
목차
1. 분원의의미
2. 광주조선백자 도요지
3. 조선백자 가마터
4. 조선분원백자
5. 마무리
본문내용
분원의 의미
분원이란 말은 사옹원의 분점이란 뜻이다.
사옹원은 대궐 내에 속해있는 관청으로 왕의 식사를 바치는 일과 대궐 내의 임식제공에 관한 일은 맡은 부서이다.
고려시대의 사선서를 본받아 조선 태조 원년(1392)에 에 사옹방으로 한 것을 다시 세조 13년(1467)에 사옹원으로 개칭하여 조선말까지 존속하였다.
사옹원에서왕실용 자기를 번조하기 위해 광주분원을 설치하고 이를 분원이라 부르는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기 기록된것은 없으나 ‘분원’이라는 명칭이 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승정원일기’ 중에 인조 3년(1625)의 일이다.
광주조선백자도요지
경기도 광주시 일대는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왕실에 진상하던 고급 백자를 굽던 지역으로서 조선 도자기 생산의 최대 중심지였다.
사적 314호로 관리되는 85개소의 가마터 외에도 최근에 조사에 의해 광주시 일원에는 290여 개소의 조선 시대 가마터가 집중 된 것으로 밝혀졌다.
면 단위별로 지금까지 확인된 가마터는 남종면에 22개소, 퇴촌면 67개소, 실촌면 41개소, 도척면 22개소, 초월면 51개소, 중부면 20개소 송정동 14개도 등이다.
참고 자료
강경숙 『한국도자사』 2006 일지사
김영원『조선시대 도자기』2003 서울대학교 출판부
김재열외 3인 『흙으로 빚는 미래 다시쓰는 경기도자사』2001 경기문화재단
김재열『KOREAN Art Book』2000 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