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북한 정권 수립 이전의 공산주의 운동
- 최초 등록일
- 2013.11.10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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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인 공산주의의 기원
2. 1928년에서 1945년까지의 공산주의 활동
3. 미군정기의 한국공산주의
본문내용
- 한인 공산주의의 기원
대한제국 멸망 후 우국지사들이 러시아, 중국, 만주,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일제에 대항할 길을 모색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마르크스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이론에 엄청난 수정을 가하면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2월 혁명으로 차르체제가 붕괴되고, 10월 혁명으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권력 장악에 성공하여 1918년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20세기 존속했던 세계 최대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탄생하게 된다. 이때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식민지팽창정책에 희생된 많은 약소국가 지도자들이 소련과 연합전선을 이룸으로써 그들의 적에 대항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이 시기 시베리아는 한국인들의 정치적인 피난처였는데, 러시아에서 이를 허용한 이유는 한국인들이 제국주의 일본에 반대하며, 일본출정군에 대항하여 제2의 전선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 략>
1945년 8월 15일 ‘건국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고, 일본은 연합군 당국이 도착할 때까지 치안 유지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여운형, 안재형 두 지도자의 활력과 경험, 건준의 존재를 보호할 기관, 반대세력의 결여로 세력이 확장되었고,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중앙인민위원과 후보위원이 선출되어 ‘조선인민공화국’ 이 탄생되었다. 이 시기에는 공산주의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었으나 좌익이 동경의 대상이 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박헌영 등이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를 결성했고, 장안파에 압력을 가해 해체를 요구하며 조공당 사상 유일한 정통파로 인정받는 ‘통합조선공산당’을 결성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