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의 성립과 원세개의 집권
- 최초 등록일
- 2014.10.10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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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중화민국의 성립과 초기 정세
Ⅲ. 제2차 혁명의 실패와 원세개의 제제운동
1. 제2차 혁명
2. 제제운동(帝制運動)
Ⅳ. 반제제운동(反帝制運動)
Ⅴ. 결론
핵심 keyword
본문내용
Ⅰ. 서론
어떻게 하면 예로부터 내려온 체제를 일신하여 근대국가적인 체제를 정비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20세기를 맞이한 중국은 이 문제야말로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입헌군주제로의 개혁에 희망을 건 일부의 청조 지배층도, 청조의 타도와 공화제의 신국가 수립에 꿈을 건 혁명파의 지식인들도 근대국가체제를 갖추어 정치 · 사회 · 경제 전반의 발전을 기약한다는 근본적인 착상에 관해서는 완전히 일치하였다.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20세기 중국의 모색은 1911년의 신해혁명(辛亥革命)과 이듬해의 중화민국(中華民國) 수립에 의해서 크게 한 걸음 내디뎠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곧 혁명으로 이어져 나갈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연 획기(劃期)는 역시 신해혁명과 중화민국 성립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중 략>
Ⅱ. 중화민국의 성립과 초기 정세
1912년 1월 1일 남경(南京)에서 공화제의 신국가 ‘중화민국’의 성립이 선언되었다. 공화국 시대의 시작이었다. 잠정적인 혁명정권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임시 대총통(大總統)에는 혁명지도자의 한 사람인 손문(孫文)이 취임했다.
그러나 중화민국을 둘러싼 내외의 정세를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립 후 중화민국은 여러 가지의 실제적인 개혁조치를 취하기 시작했으나 명목상의 중앙정부일 뿐 효과적인 지방통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한된 효과밖에 거둘 수 없었다. 더구나 일반 도시민이나 농민층으로부터의 지지를 상실해가고 있었고 그 내부는 통일적인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중화민국 스스로 정치적 · 사회적인 지지 기반이 아직 충분히 굳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열강이 중국에서의 이권 확장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중국 측의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정치 · 경제 · 사회의 근대화를 추진해 나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문은 청조의 퇴위조건으로 혁명의 성과를 최대한 확보하고 비록 원세개에게 정권이 넘어가더라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으려고 노력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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