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근대화와 개혁 - 청말 “신정”과 근대 개혁가“원세개”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20.06.30
- 최종 저작일
- 2020.06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Ⅰ. 서 론
Ⅱ. 중국 최후의 근대화
Ⅲ. 신군 세력의 성장과 원세개의 군사력 장악
1. 신정 이전 군대 개편
2. 신정 시기 군대 개편
3. 군벌로의 변모
Ⅳ. 신군 등장의 의의
Ⅴ. 결 론
본문내용
신정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의회제 개혁은 1905년 러일전쟁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청 국내 입헌운동의 진전은 러일전쟁 이후 청조의 변화된 인식과 양무파 관료들의 입헌 주장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러일전쟁 이후 과거제 폐지와 함께 국내에는 입헌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1906년 9월 1일 청조의 역사적인 예비입헌 방침이 선포되었고, 한편으로 청조는 이와 동시에 관제개혁을 실시하여 지방의 총독, 순무직 대신에 도독(都督)을 임명하되 예전에 지방장관이 장악하던 군사권과 재정권을 중앙정부로 회수하려 하였다. 이는 신해혁명까지 실시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만한(滿漢) 구별을 철폐한다는 명목으로 중앙 각 부의 상서(尙書)에 만한 대신을 각각 1명씩 임명하던 것을 1명으로 줄이되 만주인 대신을 다수 임명하였다. 청조의 의도는 중앙집권화와 만주 황실의 권력 강화로, 입헌논의 역시 신사층의 불만을 잠재우고 혁명의 위험성을 막아 아래로부터 청조 권력을 뒷받침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방 신사층은 지역에 토착화한 지배엘리트였으므로, 무엇보다도 지역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고, 자연히 지방분권적 성향이 강했다. 따라서 청조의 신정과 입헌 추진이 중앙집권적 성격을 강화할수록 입헌파 신사층과는 충돌이 생겼고, 장기간 지방장관으로 세력을 쌓아온 한족 대관들의 이해와도 저촉되었다.
참고 자료
강진아, 『문명제국에서 국민국가로』, 창비, 2009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강좌 중국사 Ⅵ : 개혁과 혁명』, 지식산업사, 2010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강좌 중국사 Ⅶ : 신질서의 모색』, 지식산업사, 1989
장의식, 「淸末 육군학당 교육의 발흥 : 新軍의 교육배경에 대한 기초적 연구」, 『대구사학』, 대구사학회, 2001
조훈, 「사학과 창설 50주년 기념논집 : 제 2부 동양사편 ; 북양군벌 통치시기사 연구경향」, 『사림(성대사림)』, 수선사학회, 1997
최관장, 「사회과학 : 중국의 군벌정치 연구(1916-1928)」, 『중국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