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속의 6.25 전쟁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4.11.12
- 최종 저작일
-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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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 미술에서 6.25 전쟁의 의미
2. 6.25 전쟁 시기의 종군화가
3. 전쟁과 관련된 작품들
4. 전쟁이국미술에 끼친 영향
5. 성상화
6. 출처
본문내용
1. 한국미술에서 6.25 전쟁의 의미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이다. 이는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최초이자 최후의 현대전이라고 불리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한국을 살아간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6.25는 끝나지 않은 전쟁일 것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대다수 한국인들은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향과 이산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더욱이 이념의 충돌과 동족상잔이라는 전쟁의 비극적 상황은 개개인의 기어 속에 지울 수 없는 증오와 울분을 남겨 놓았다.
전쟁이 가져다 준 파괴와 공포, 폭력과 증오의 경험은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지나간 역사 속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전쟁 전후 한국인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어 한국 사회에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 이후 한국미술에서 6.25전쟁은 전쟁이 야기한 물적, 인적, 심리적 상실을 근간으로 재현되었다.
6.25전쟁은 많은 미술가들에게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했다. 해방공간의 열기 속에서 미술가들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전쟁으로 인해 이념과 국가의 총체적 폭력 속으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낡은 군복과 조그마한 증명서는 ‘종군화가’로서의 신분을 보장함과 동시에 때로는 전쟁기간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을 보존하는 수단이었다.
2. 6.25 전쟁 시기의 종군화가
6.25 전쟁에서의 종군화가는 종군기자나 종군작가와는 다른 기능을 지녔다. 전장의 사실을 급히 글로적어 기사화하거나 후방의 국민들에게 직접 체험한 일을 보고하는 방식을 통하여 전장의 사정을 전하는 것과는 달리 전투장면은 이제 그림이 아닌 사진이 대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군화가단이 결성된 것은 군과 민간인이었던 미술가들 양쪽의 모두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전시에 자신의 터전을 잃고 현실적 생활을 해나가는데 문제였던 예술인들에게 작품 활동을 주선하고 어느 정도 생계유지를 도와주었다. 종군화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종군화가단에 입단한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신분보장’이었다. ‘대한민국과 함께 산다.’는 명분 제시용이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 근대미술걸작전 : 근대를 묻다' 특별전시 2008.12.23.~2009.03.22 자료
문화저널21 기사, <1950년대 한국미술 속의 전쟁이미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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