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경전 - 사서
- 최초 등록일
- 2015.03.21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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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학의 경전 중 사서에 대해 그 성립 배경과 함께 소개하는 글입니다.
목차
1. 사서(四書)의 정립
2. 대학(大學)
3. 논어(論語)
4. 맹자(孟子)
5. 중용(中庸)
본문내용
1. 사서(四書)의 정립
사서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의 네 가지의 유학 경서를 일컫는 말이다. 당(唐)나라 이전의 유학을 오경(五經) 중심의 유학, 송(宋)나라 이후의 유학을 사서(四書) 중심의 유학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漢)나라의 7대 황제 무제(武帝)이후 유학과 유학의 오경이 존숭되기 시작했다면, 사서는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또는 朱子)의 업적에 의해 유학의 주요 경전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북송(北宋)의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는 예기(禮記)에서 「대학」과 「중용」편만을 따로 꼽아 이 둘을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로서 중시했다. 정호와 정이의 학설을 계승한 주희는 사서에 주석을 붙인 『사서집주(四書集註)』를 간행했는데, 대학장구(大學章句) 1권, 중용장구(中庸章句) 1권, 논어집주(論語集注) 10권, 맹자집주(孟子集注) 7권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대학과 중용은 예기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논어, 맹자와 더불어 유교의 기본 교과서인 사서(四書)로서 정착하게 되었다. 주희는 대학이 근본적인 큰 틀을 제시해 주고, 논어를 통해 기본을 다질 수 있으며, 맹자를 통해 세세한 부분들을 다룰 수 있고, 중용이 미묘하고 심원한 차원의 철학을 제공해 준다고 보았다.
송대(宋代)에도 과거에 급제한 새로운 진사에게 대학과 중용등을 하사하는 풍조가 있었고, 주희의 사서집주가 원(元)나라 인종(仁宗) 2년(1313년)에 과거의 기본 교재로 인정된 이후 사서는 학자들에 의해 크게 존숭받게 되었다.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사서는 오랫동안 중국의 학교 교육과 관료 선발시험에서 공식적인 기본 교재였다.
1. 사서(四書)의 정립
사서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의 네 가지의 유학 경서를 일컫는 말이다. 당(唐)나라 이전의 유학을 오경(五經) 중심의 유학, 송(宋)나라 이후의 유학을 사서(四書) 중심의 유학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 자료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휴머니스트
대학·중용 강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맹자 『맹자』 (해제),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공자 『논어』 (해제),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