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생애와 사역
1. 생애 (1938~1978)
2. 사랑의 교회 (1978~2004)
3. 제자훈련(1978~2004)
4. 소천(2003~2010)
Ⅲ. 신학사상
1. 신론
2. 인간론
3. 기독론
4. 구원론
5. 교회론
6. 성경론
Ⅳ. 나가는 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옥한흠 목사는 광인으로 통한다. 복음에 미친 사람, 제자훈련에 미친 목회자이다. 그의 72년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기에 이보다 좋은 단어는 없다.”라고 『광인: 옥한흠을 말하다』라는 책에서 말한다. 이 책에서 뿐만 아니라 옥한흠 목사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광인이라 칭하였고 여러 책에서도 그를 광인이라 칭한다. 그렇다 그는 복음에, 제자훈련에, 예수님께 광인 이였던 목회자이다.
옥한흠 목사의 생애와 사역, 그의 신학 사상, 제자훈련 등을 보면서 옥한흠 목사가 끼쳤던 영향 등을 보고자 한다.
Ⅱ. 생애와 사역 1. 생애(1938~1978)
옥한흠 목사는 1938년 12월 5일 경상남도 거제도 산골마을에서 아버지 옥약실과 어머니 이희순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옥주래 영수가 선교사에게 복음을 들은 후 바로 상투를 자르고 제사를 폐해, 당시 보수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마을 안에는 상당한 핍박을 받았다.
그런 어머니를 따라 교회도 다니고, 당시 유행하던 사경회란 사경회는 다 쫓아다니던 어린 옥 목사는 거제 일운초등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셨다는 뜨거운 구원의 감격을 경험했다. 이후 거제 지세포 대광중학교 시절 부산 모 수련회에서 또 한 번 십자가의 강력한 은혜를 체험하게 됐다. 옥 목사에게 있어 이 일은 그의 평생의 신앙을 붙들려 주는 사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일학교 예배는 물론 장년 예배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던 그에게 교회 어른들은 자주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가족들이 고생하는 게 싫어 궁핍한 목회자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꼭 해군 장교가 되어 선상에서 사병들과 예배도 드리고 복음도 전하며 살아야지.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보여주며 살 거야’라고 다짐했던 그는 사실 목회자의 길을 피하는 탈출구로 사관학교를 택했던 것이다.
참고 자료
디사이플 편집부. 『광인 옥한흠을 말하다』.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0.
박용규. 『한국 교회를 깨운다』.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8.
옥한흠, 『평신도를 깨운다』, 개정2판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0.
옥한흠, 『그 뒤안길 이야기』,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6.
옥한흠, 『전도자』,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5.
옥한흠, 『제자훈련 교제 인도자 지침서』,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1999.
옥한흠, 『전도프리칭』,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3.
옥한흠,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5.
옥한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 로마서2』,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1993.
옥한흠,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다』,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7.
박성원, “옥한흠 목사의 설교연구” 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설교학전공 석사학위논문,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