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이해집단의 영향에 대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9.07.20
- 최종 저작일
- 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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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1) 연구배경
Ⅱ.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일본 정부의 대응한계
1) 매뉴얼에 따른 초기 대응에 대한 한계
2) 정보제공에 대한 한계
3) 오염수 처리에 대한 한계
Ⅲ. 원전 이해 집단의 영향
1) 행정기관을 중심으로
2)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3) 언론을 중심으로
Ⅳ. 원전의 한계점과 피해
1) 원전사고와 인명피해
2) 지역주민의 피해
3) 환경과 미래세대에 대한 피해
Ⅴ. 결론 및 시사점
1) 한국의 탈 원전정책의 논쟁점들
2) 시사점
Ⅵ. 참고 문헌
본문내용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2011년 3월 11일 낮 시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이에 따른 초대형 쓰나미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1~4호기)에서 정전이 일어나고 원자로 냉각기능이 장시간 중단되어 대량의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모든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원자로 건물에서 대형 수소가스 폭발이 3차례나 일어나는 대형사고로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어 대기, 토양 및 해양 등 광범위한 범위에서 오염이 일어났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 처리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 사고로 약 1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피난생활을 하였거나, 하고 있다. 일본은 이 사고가 생기기 전에는 세계 최고의 원자력 안전국가로 인정받고 있었으므로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생기리라고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쓰나미가 1차적인 직접 원인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원전 설계의 문제 및 위기 대처 능력의 부족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인재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런 인재를 야기한 다양한 원인 중 원전 이해집단의 영향은 어떠했을까?
후쿠시마 원전 건설 당시의 자연재해에 대한 설계 기준은 대형 지진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기준보다 낮았을 정도로 자연재해가 심한 일본의 특성을 과소평가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사고조사에서 밝혀졌다. 또한 시공과정에 비전문가가 참여하였으며 시공 중 배관 내부에 도구나 공구를 넣은 채 배관을 연결하는 등의 실수가 있었다는 현장감독의 증언도 있었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안전관리 및 운영에 있어 지나치게 폐쇄적인 특수집단만의 원전독점주의 문화에 근거한 기술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합리주의 혹은 이익 독점주의라는 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고라고 볼 수도 있다. 일명 ‘원전 마피아’라 불리는 원전 관련자들(각종 원전관련 관리자, 학계 및 도쿄전력 등)의 폐쇄적인 인적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나라의 원전 사고에서......<중 략>
참고 자료
공론화위원회, “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단 구성 권고안 제출” Weekly 공감, No. 415, 2017
한홍구, 다카하시 테츠야, 서경식, “원전과 국가 그리고 민주주의 - 후쿠시마 그 이후”, 황해문화
사토 에이사쿠, “후쿠시마 원전의 진실”, 평범사, 2011
Charles Perrow, “ Nuclear denial : From Hiroshima to Fukushima”,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5. 김종철, “후쿠시마, 민주주의, 상상력 - 농색평론평화네트워크와 프레시안 공동 탈핵강연”,
김문정, “핵에너지의 윤리적 검토 – 한스 요나스의 책임윤리를 중심으로”, 새한철학회, 철학논총, 제7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