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발자취 및 업적
- 최초 등록일
- 2020.07.05
- 최종 저작일
- 2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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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이팅게일의 전반적인 발자취와 나이팅게일의 간호론을 분석함.
목차
1. 서론
2. 행정가로서 탁월한 능력 발휘
3. 군 의료 체계 향상을 위해 노력
4. 나이팅게일의 유산
5. 나이팅게일의 간호론
본문내용
현대 간호의 창시자이며 군 의료 개혁의 선구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출생 - 사망
1820.5.12. ~ 1910.8.13.
나이팅게일의 간호철학 : 환경
피렌체’(Firenze)를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고 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바로 이 지명에서 비롯된 것. 영국으로 돌아와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자라난 플로렌스는 17세 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본인은 하느님으로부터 간호사가 되라는 소명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가족은 결사 반대했다. 빅토리아 시대까지만 해도 간호사는 비천하고도 부도덕한 직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플로렌스처럼 버젓한 집안에서 태어난 처녀가 자원할 일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마치 내가 식모가 되겠다고 말한 것 같은 반응이 나왔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그 당시 가족의 반응을 훗날 이렇게 설명했다.
최초의 시도가 좌절된 이후, 플로렌스는 여러 차례 청혼을 거절해 가면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집에 있을 때에는 의학 및 병원 관계 문헌을 입수해서 읽었고, 가족을 따라 국내외 여행을 할 때에는 혼자 인근의 병원과 요양소, 빈민수용소 등을 견학했다.
31세 때인 1851년에는 이집트 여행 중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소명을 확신했고, 33세 때인 1853년에는 드디어 런던에 있는 소규모 자선 요양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제는 부모도 과년한 딸의 독립적인 활동에 간섭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마저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플로렌스의 어머니는 언젠가 친구들 앞에서 울먹이며 이렇게 한탄했다고 전한다. “우리는 오리인데 어쩌다가 야생 백조를 낳았을까.” 하지만 전기 작가 리튼 스트레이치의 말마따나 “그 가련한 부인의 생각은 틀렸다. 그들이 낳은 것은 백조가 아니라 독수리였으니까.”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 -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이며 군 의료 개혁의 선구자 (인물세계사)
나이팅게일의 간호론 (나이팅게일 –현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