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사회] 마광수와 페미니스트 마광수의 일생속
- 최초 등록일
- 2004.05.08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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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자료는 성과사회라는 강의 중 마광수와 페미니스트라는 주제에서 토론내용을 여러책들을 참고하여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마광수가 준 `고통`
2. 마광수에 대한 반응의 다차원성
3. 마광수의 `위선에 대한 원한`
4. 마광수의 `사회적 가치`
5. `집단주의적 정서`와 `침묵의 소용돌이`
6. 마광수와 진보주의자는 `같은 배`에 탔다
본문내용
1.마광수가 준 '고통'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와 연극 [미란다]가 불러 일으킨 외설 시비는 평소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무척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법하다. 그 관계에 대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미 확고한 신념을 가진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야 어느 쪽이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발산하는 것으로 족하겠지만 말이다. 나역시 누가 답을 요구한 것도 아니건만 주제넘게 그런 고통을 느꼈던 사람들 중의 하나다. 나는 왜 고통스러워했던가? [즐거운 사라]와 [미란다]에 관한 논란은 문어발식 경영을 하는 우리나라 재벌과 닮았다. 도무지 안건드리는게 없다. 나는 [미란다]는 보지못했으므로 [즐거운 사라]에 집중해 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즐거운 사라]가 제기한 논란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법, 도덕, 섹스, 문학, 출판, 페미니즘 등등 모든 것에 대해 다 알아야겠는데, 나는 언론학도로서 그저 언론에 대해서만 비교적 잘 알 뿐이다. 새삼스럽게 외국의 외설 관련법에 대해 다시 공부했지만, 그건 그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분야의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D.H. 로렌스는 D.H.로렌스이지 마광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언론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되는 면이 없지 않은 '표현의 자유'를 무조건 부르짖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그저 건전한 상식에 의존해 내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고통스러울 수 밖에 벗다. [즐거운 사라]는 '건전한 상식'으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수수께끼와도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겪은 고통이 전혀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하고 열심히 남의 이야기와 글을 듣고 읽은 결과 아주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법의 개입에 대한 찬성여부는 무관하게 [즐거운 사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보아 '적대적'이거나 '비적대적'인데,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비적대적'이라 함은 '마땅치 않지만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으로 분노 또는 경멸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대적'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즐거운 사라]에 대해 진지하게 '호의적'인 사람은 아마도 마광수 하나밖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만날 수 없었다. [즐거운 사라]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비적대적'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 또는 배경은 너무도 다양해 다음과 같이 표를 만들어 분류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각 유형의 사람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면 비단 [즐거운 사라]뿐만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예술과 외설'논쟁의 생산성을 올리는 데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