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와 지역]의정부시 지역개관
- 최초 등록일
- 2005.05.04
- 최종 저작일
- 2004.11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인구와 지역시간에 제출햇던 팀 레포트 입니다.
의정부시의 지역개관, 출생률,사망률 등을 비롯해서 인구증가추세와 그로 인해 비롯된 지역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다루었습니다. A받았습니다! 사회학과 학생들과 관련 교양과목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1]의정부시 지역개관
1.역사
2.자연
3.산업
4.교통
5. 사회문화
[2]의정부시의 출생과 사망
1. 의정부시의 조출생률
2. 의정부시의 조사망률
3. 연령별 인구 구성비
4. 인구 부양비
5. 인구추이 및 성비율
[3]의정부시의 인구 이동
[4]끝마치며..
본문내용
[1]의정부시 지역개관
1.역사
의정부시는 경기도 중부에 있는 하나의 시로 조선조 태종 때 상왕인 태조가 함흥에서 돌아와 잠시 머무를 때 정승들이 국사를 논했다는 전설에서 “의정부”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의정부시는 1963년에 시로 승격이 되었는데 고조선 때는 진, 삼한시대 때는 진한 땅에 딸려 있었다고 하나 그 경계가 확실치 않고 고구려 때에 매성현에 속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태종 13년 (1413)에 양주도호부로 이름을 고치면서 그 밑에 견주, 사주, 풍양 등 세 현을 두었는데 지금에 의정부시와 양주군은 견주, 동두천 시는 사주, 남양주 군은 풍양에 속해 있었다. 연산군대에 이르자 의정부 지방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지 11년 되던 해 7월 그는 도성을 중심으로 사방 1백리 안을 임금의 놀이터로 삼을 것을 명령했다. “과인이 이제 창의문 박이 산 좋고 물 맑아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므로, 금표를 세워 별궁을 짓고 잠시 쉬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니 그 지형을 그려서 바치도록 하라” 이렇게 연산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도성 동북쪽으로 양주, 포천, 광주 일대 등에 사는 남녀 2만 여명이 강제로 쫓겨나면서 농토마저도 빼앗기고 말았다.
‘인가를 철거하고 금표를 세우니 멀리 쑥대밭만 바라보이고 사람 사는 것을 볼수 없다. 비록 일반 백성들이 조상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지내려고 하더라도 감히 금표 안에 들어가지 못 한다.’ 라는 기록을 보아도 그 당시 의정부가 얼마나 황폐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중종 반정이 일어나던 해에 양주가 다시 복치 되어 불곡산 밑에 관아를 두니 지금의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 이다.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에 전국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 366군을 새로 설치 할 때 한양부 양주군으로 되었다가, 다음 해에는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한일 합방 후 1912년 양주군은 32개의 관할 면을 두었는데, 그 중 시북 면과 둔야 면이 오늘 날 의정부시의 모체가 된다. 1914년 4월 1일을 기하여 전국 행정 구역을 정비함에 따라 시북면과 둔야 면을 병합함에 그 머리 자를 따서 시둔 면이라 개칭하고 11개 방리를 두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