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고려군사쿠테타의 의미
- 최초 등록일
- 2006.01.18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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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무신정변에 관한 소개와 무신정변의 의미 등을 생각해보았다.
대부분 무신정변을 비판하고 있지만, 반대로 무신정변의 긍정적 의미를 중심으로 레포트를 작성하였고, 이후 문벌중심으로 가게 된 조선의 역사가 식민지 시대로 이어진 걸 생각해볼 때 무신정변은 우리 역사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을거라는 추측을 해봤다. 때문에 일본 사무라이 문화와 우리 나라의 문화, 사무라이 문화의 특징(실리중심), 사무라이라는 말의 어원 등에 관한 조사와 비교도 첨부했다.
목차
고려군사쿠테타의 의미
1. 긍정적견해
무신정변의 정의
2. 일본 사무라이 문화와의 비교
손자병법의 나라, 일본
3. 결론
본문내용
.....그러나 정중부의 집권도 잠깐이었다.
정중부는 다시 경대승의 손에 숙청되고, 경대승은 도방을 두어 자기의 신변을 지키면서 권력을 휘두르다 병이 들어서 죽었다.
경대승이 죽은 뒤 이의민이 권력을 잡았으나, 곧바로 최충헌에게 피살되었다.
무신 정변이 일어난 1170년부터 최충헌이 정권을 잡은 1196년까지 자그마치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무신들은 서로 토지와 권력을 빼앗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였다.
그러다 보니 고려 사회는 크나큰 혼란에 빠졌고, 백성들의 생활은 말이 아닌 지경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무신들 사이의 권력 쟁탈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최충헌은 정권을 잡은 뒤 명종 26년인 1196년에 봉사 10조를 왕에게 올렸다. 그 때 왕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봉사 10조는 왕의 형식적인 승낙을 얻고는 최씨 정권의 정책이 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대토지 소유자의 토지 겸병을 제한하고 사원 승려들의 특권을 제한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이들한테서 거두어들인 토지는 모조리 최씨 일가와 그들의 심복 무신들의 몫이 되었다.
참고 자료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저: 호사카 유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