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현대사회]안락사에 대한 생명윤리적 접근
- 최초 등록일
- 2006.01.23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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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세대 기독교와 현대사회 시간에 작성한 조별 발표 보고서입니다.
기현사를 듣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안락사의 정의
2. 안락사의 분류
3. 안락사의 대한 각국의 입법
4. 안락사를 찬성하는 이유
5.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유
6. 안락사 시술과 관련된 사례
7. 안락사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
8. 결론
본문내용
안락사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
①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도 죄에 해당하므로, 아무리 환자의 요청이 있었다 하더라도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 행하는 자살인 셈이며 정당화 될 수 없다.
② 기독교윤리는 상황윤리나 공리주의와는 달라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악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 육체적 고통이 너무 심해 죽음이 유일한 해결인 것처럼 보이는 특별한 상황에서 환자에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의사의 행동 자체는 명백한 살인 행위인 셈이다.
③ 안락사가 불치환자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먼저 고통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왜 하나님은 고난(고통)을 허용하시는가?
스프라울은 "왜 나는 그리스도교를 믿는가?"에서
1) 타락 전에는 고통이 없었으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죄나 고통은 없을 것이다. 결국 고통이란 기본적으론 죄와 관계가 있다.
2) 그렇지만 각 개인의 고통과 죄가 항상 동일한 정도의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이유 때문에 고난과 고통이 우리에게 있는 경우도 있다{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요9장), 인간의 성화를 위하는 것(욥23:10) 등이 있을 것이다.}
3) 자신에게 닥친 고통의 원인을 욥의 경우처럼 스스로는 끝내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 모든 고통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4) 고통에 대한 궁극적인 문제는 `왜 우리가 행한 것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지 않는가?`이다. 우리는 늘 아침잠에서 깬 이후 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멸망시키지 않으셨는가를 의아해 해야 한다.
고통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때,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고 또 없애고자 노력하는 것들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고통의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각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 거의 맹목적으로 모든 수단(자살, 적극적 안락사 등)을 동원해서라도 육체적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지고선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초월적 삶의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④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도 무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그러나 도저히 소생가능성이 없는 사실상 식물상태의 환자에 대하여 막대한 비용이 더는 인위적 생명유지장치를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엄격한 요건과 사정하에서는 인위적인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행위를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