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나이팅게일
- 최초 등록일
- 2006.10.15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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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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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그의 출생과 준비
2. 크리미아 전쟁에서의 업적
3. 나이팅게일 간호학교
4. 그의 후반기 업적
5. 그의 간호이념
본문내용
1. 그의 출생과 준비
영국의 명문으로 명문으로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윌리암 나이팅게일(William Ningtingale)은 그의 부인 패니(Fanny)와 함께 경치와 기후가 좋은 이탈리아 플로렌스(Florence)에서 긴 별장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1820년 5월 12일에 이곳에서 둘째 딸을 낳아서 이름을 그 지명을 따라 플로렌스라고 지었다.
플로렌스가 한 돌이 지난 후에 나이팅게일 일가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부자집 딸로 전통과 예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국부인으로 두 딸을 매우 귀하고 법도 있게 양육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매우 높은 이상과 신사도를 지키는 사람으로써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딸들을 손수 가르쳤으며 어려서부터 고전학 ·어학·역사 등을 착실하게 공부시켜서 플로렌스는 7세 때 벌써 프랑스어로 일기를 섰다고 한다.
그는 소녀 시절부터 병든 사람을 잘 돌봐 주었으며 동리의 가난한 환자를 방문하기도 하고 동물까지 간호해 주는 성품을 지녔다. 그는 유럽 각국을 여행했으며 20세가 되자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부모에게 알렸다. 그러나 부모는 당시의 간호사의 생활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찬성할 리가 없었다. 마침내 그가 간호사업을 자기의 평생 사업으로 정한 것은 그가 24세 때였다.
1851년 그가 31세 되던해 가족들의 양해를 받고 독일의 카르세르스베르트(Kaiserswerth)에 플리드너 목사 내외가 경영하는 여집사 간호단에서 처음 2주간 훈련을 받았으며, 그후 다시 3개월간 실습했다. 이 기관에서 강습한 것 외에는 공식적인 강습은 받지 않았다.
그는 여집사단 같은 것을 신교사한에 조직하고 그들에게 간호에 관한 것을 가르치려고 했다. 그래서 가장 조직적으로 움직여진다는 유럽 여러 곳의 병원을 돌아보고, 1853년에 파리의 자선 간호단에서 견습하기로 협정했으나 병고로 이루지 못하고 다만 1개월의 간호사의 조직과 내용을 공부했다. 프랑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 및 독일 간호제도들에 대한 해석과 비교표를 이시기에 저술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