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1960년대 한국 영화사
- 최초 등록일
- 2006.10.29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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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60년대의 한국영화사를 총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깔끔하게 편집하였습니다.
목차
1960년대 영화사
● 영화의 전성기
● 영화 정책
● 일반 흥행 영화
● 전성기의 작품과 주역들- 화제작, 문제작 주변
● 대표적인 감독
-신상옥,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 정상에 떠오른 무비스타
본문내용
60년대는 한국에 방송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TV 보급이 확대되면서 종래의 영화가 가지고 있던 상업적 구조가 깨어지고 지금까지의 영화 관객이 안방으로 분산된다.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던 극들을 안방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TV의 영향 속에서도 60년대에는 많은 영화가 발표되는데,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1,500편이 훨씬 넘는 한국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적 풍요 속에서도 작품의 뚜렷한 경향은 없었는데, 다만 2-3년마다 히트작의 아류작들이 이어지고 다양한 장르 영화가 공존했다
● 영화의 전성기
50년대 당시 3만대에 지나지 않던 텔레비전 수상기의 보급도, 문화방송(MBC-TV)이 개국되던 69년 말에는 22만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도 영화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오락의 중심에 있었다. 적어도 컬러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영화사가들은 1960년대를 한국 영화의 전성기로 분류하는데,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는 영화 제작 편수의 증가와 작품의 질적 향상을 들 수 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불과 87편이 만들어져 소강 상태를 면치 못했으나, 불과 2년 만에 ‘100편의 벽’을 뛰어넘어 112편을 기록했다. 69년에는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200편 선을 돌파하는 제작의 황금기에 이른다. 총천연색 영화 비율이 흑백 필름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성과로 꼽히는 <오발탄>, <하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만추>, <갯마을> 등이 제작되었다.
둘째는, 극장과 영화 관람객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1950년대까지는 전국의 극장 수가 200여 개, 연간 관람객 수가 1000만 명에 미치지 못하던 것이, 61년에 이르면서 160개에 가까운 극장이 세워지고 관객 또한 5배 이상 늘어나 5,800여 만 명에 이르렀다.
끝으로는, 제작, 배급 등 유통 구조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까지는 영화 제작은 개인 제작사가 중심이었다. 먼저 만들고 싶은 영화의 각본과 최소한의 제작진을 갖추고 전주를 구한 다음에야 회사 간판을 거는 식의 투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60년대로 들어와서는 일정 시설과 운영 체계를 갖춘 방식이 요구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