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에 의한 가족제도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7.01.06
- 최종 저작일
- 2007.01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무료
다운로드
소개글
1. 유교란?, 유교의 흐름은?
조선은 유교가 국교였다. 이는 유교적인 윤리와 질서가 정치, 사회, 일상적인 생활까지 규제하고 통제하는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유가는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속에서 나온 처방전으로서 그 핵심은 正名과 克己復禮(정명 극기복례)이다. 즉 이름을 바르게 하며, 사사로운 욕심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뜻은? 각자가 맡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뜻이다. 즉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지아비는 지아비 답게, 지어머미는 지어미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유가는 각자의 사회적 역할에 맞는 구체적인 행동규범을 마련 했는데 그것이 바로 ‘禮(예)’이다. 사리사욕을 억제하고 규범에 따라 행동하면,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봄. 이는 겉으로 나타나..
목차
1. 유교란?, 유교의 흐름은?
2. 유교가 조선사회의 가족제도에 끼친 영향
본문내용
1. 유교란?, 유교의 흐름은?
조선은 유교가 국교였다. 이는 유교적인 윤리와 질서가 정치, 사회, 일상적인 생활까지 규제하고 통제하는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유가는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속에서 나온 처방전으로서 그 핵심은 正名과 克己復禮(정명 극기복례)이다. 즉 이름을 바르게 하며, 사사로운 욕심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뜻은? 각자가 맡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뜻이다. 즉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지아비는 지아비 답게, 지어머미는 지어미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유가는 각자의 사회적 역할에 맞는 구체적인 행동규범을 마련 했는데 그것이 바로 ‘禮(예)’이다. 사리사욕을 억제하고 규범에 따라 행동하면,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봄. 이는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뿐만 아니라 속으로의 마음가짐과 생각의 표준까지 규정한 체계적이고 철저한 ‘길들이기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러나 공자와 맹자의 처방은 생존경쟁이 치열하였던 춘추전국시대에 별 호소력이 없었다. 부국강병으로 천하를 통일한 것은 법가와 병가이다. 秦始皇(진시황)은 분서갱유에서 보듯이 유학자들 박해하였다. 그러나 통일제국을 유지하려면 법과 무력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부족하였다.
길들이기라면 역시 儒家(유가)이다. 한나라의 고조(유방)는 유가를 아주 싫어했지만, 숙손통이 야수 같던 장수들을 길들이는 솜씨에 감탄. 무제 때는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채택하고 유학자들을 관리로 등용. 유교는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국가와 사회생활에 깊숙이 침투. 2천 여년동안 중국인의 사고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