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조선공산당
- 최초 등록일
- 2007.03.22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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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공산당에 관한 짧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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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공산당은 해방과 함께 당을 재건하고, 좌파운동의 중심을 형성하면서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 정치를 시도하였다. 조선공산당의 활동은 적어도 1945년 말까지는 상대적인 우위를 유지하였다.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분열되어 있었고, 김구․이승만을 비롯한 우익 정치지도자들은 해외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국내에서 확고한 지지기반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특히 우파 민족주의세력 일부는 과거 일제 식민정책에 협력하여 친일파로 비난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데 한계가 많았다. 나아가 일제 식민지배에 지친 노동자․농민 등 기층 대중들이 급진적인 성향을 표출하는 조건도 근본적인 수준의 혁명을 주장하는 조선공산당에 유리하였다.
조선공산당은 이러한 조건에 힘입어 해방직후 다른 정치집단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무엇보다 체제모순을 청산하고 대중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에 적극 개입하여 새로운 국가형성운동의 흐름을 장악하였다. 특히 조선공산당은 계급운동․사회주의운동의 중심이 되는 대중․대중조직과의 관계에서도 우익에 비해 앞서 있었다.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의 지도자들은 공산당은 지지세력은 4백만명에 이르며, 조선에서 최대의 정치세력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조선공산당이 사회주의 정치를 펼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였던 해방직후의 정치지형은 미군정의 점령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해체되어 갔다. 해방이라는 정치상황에서 미국․미군정이 조선공산당의 사회주의운동 전망을 왜곡시킨 중요한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외세라는 외부적 요인 못지 않게, 내부적으로 조선공산당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운동 자체의 의미와 한계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해방직후 사회주의운동의 결과를 모두 외부적 요인으로 환원시키는 태도로는 과거 운동속에서 미래를 사고할 수 없다. 해방 후 사회주의운동 자체의 오류와 한계가 미군정을 비롯한 외부적 요인이나 객관적 조건 때문에 정당화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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