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미용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03.28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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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미용의역사
목차
Ⅰ. 삼한시대의 미용
Ⅱ. 삼국 시대의 미용
Ⅲ. 통일신라 시대의 미용
Ⅳ. 고려시대의 미용
Ⅴ. 조선시대의 미용
Ⅶ. 근ㆍ현대의 미용
본문내용
Ⅰ. 삼한시대의 미용
포로를 노예로 만들어 머리를 깎아 표시하였으며 수장급은 관모를 썼다. 일반 남성은 상
투를 하였고 문신을 하여 그 위치와 크기에 따라 신분과 계급을 구분하였다.
Ⅱ. 삼국 시대의 미용
고구려인들은 무용총. 쌍영총 등의 고분 벽화에서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여인들은 얹은머
리, 쪽머리, 풍기명머리, 중발머리 등 두발 형태가 다양하였다.
얹은머리 : 머리를 뒤에서 앞으로 감아올려 끝을 앞머리 가운데로 감아올린 머리
쪽진머리 : 뒤통수에 낮게 머리를 땋아 틀어 올리고 비녀를 꽂은 머리
풍기명머리 : 양쪽 귀 옆에 일부분의 머리를 늘어뜨린 머리
증발머리 : 뒷머리를 낮게 두발에 묶는 머리
쌍상투머리 : 앞머리 양쪽에 틀어 얹은 머리
민머리 : 틀어 올리거나 쪽지지 않은 머리
백제인들은 일본에 화장품. 화장술을 전파한 것으로 보아 미용술이 매우 발전되었다.
마한의 전통이 이어져 남자는 상투를 틀고, 미혼녀는 댕기머리를 기혼녀는 두발을
두 가닥으로 나누어 쪽머리를 하였다.
신라인들은 남자는 상투를 틀고 여자는 얹은머리와 쪽머리를 하고 가체를 사용하였다.
당시의 두발형은 신부표시의 수단이었다. 백분. 연지. 눈썹먹이 얼굴화장에 사용되
었고, 남자화장이 성행하였으며, 향수와 향료제조를 하였다.
Ⅲ. 통일신라 시대의 미용
화장품 제조 기술발달로 화장합, 토기분합, 향유법 등이 만들어져 옅은화장이 진해지기
시작했으며, 남자의 화장이 성행했다. 가발을 사용하여 얹은머리를 했으며, 빗은 빗질할
때 사용하는 외에 장식용으로 머리에 꽂고 다녔다.
Ⅳ. 고려시대의 미용
통일신라시대의 화장문화가 발전하여 매우 화려하였다. 화장술은 분대화장과 비분대화장
으로 구분된다. 분대화장은 머릿기름을 번지르 하게 바르고, 분을 두텁게 바르고, 눈썹을
가늘게 그리고, 볼에는 연지를 발랐다. 고려 초기 교방을 설치하여 분대화장을 가르치고
기생 훈련을 시켰다. 면약(안면 화장품)과 염색을 하였고, 관아에서는 거울제조자와 빗
제조자를 두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