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창덕궁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7.04.27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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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덕궁을 다녀와서 쓴 답사기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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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돈화문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 너머로 나지막한 산자락, 힘 있게 솟은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돈화문과 창덕궁은 가까이는 응봉에, 멀리는 북한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돈화문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멀리서부터 북한산을 바라보며 조화를 느꼈다. 돈화문 가운데에 북한산이 맞게 들어오는 광경은 북한산이 돈화문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었다. 문짝 셋을 보면 역시 가운데 문이 좌우의 문보다 약간 더 크다. 왕만이 드나드는 어문이다. 돈화문은 광화문처럼 석축 위에 높게 짓지는 않았지만 다른 궁궐 정문들이 대개 정면 3간인데 비하면 규모가 크다. 규모가 크다고 꼭 품위가 있는 것은 아니나 돈화문은 규모에 걸맞게 품위가 있었다.
금천교는 600년이 지났는데도 끄떡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경외심이 저절로 나왔다. 마모된 돌에서 오랜 세월의 인고와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오히려 요즘 더 발달된 기술로 시멘트로 만든 다리보다 안정감이 있고 멋이 풍겼다. 건물을 복원해서인지 금천교와 금천교에서 진선문으로 이어지는 삼도와 진선문의 축이 제각각이었다. 복원을 하면서 서로 다른 질감이 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축이 어긋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매우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진선문을 들어서서 만나는 네모난 넓은 마당은 즉위식이나 각종 큰 잔치, 중대한 재판을 진행하던 곳이다. 왕들은 이 마당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인정문을 들어가 인정전 용상에 앉음으로써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인정문도 문이 셋으로 되어있고 가운데 문이 좌우의 것보다 조금 더 큰 어문이다. 지금은 어느 문으로 들어갈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지난번 경복궁 답사 때에는 당당히 어문으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겸손한 자세로 좌우의 문으로 들어간 것이 옛 분위기를 더 맛볼 수 있었다. 인정문 밖에서는 수선거리던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무언가 고요해지고 정제된 느낌이 든다. 관원들이 자기 품계에 따라 도열을 하도록 표시를 해 주는 품계석이 두 줄로 늘어서 있다. 솔직히 경복궁의 근정전 앞뜰에 서는 것처럼 무언가 훈훈하면서도 가슴이 벅차오르지는 않았다. 조정에는 원래 평평한 돌 - 박석을 깔았는데 일제가 이를 내고 대신 잔디를 심었다. 조정이 옹색해졌을 뿐 아니라 원래의 기능이 어떠했는지를 알기가 어려웠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옛 박석과 비교해 보았을 때 기계로 다듬은 박석은 우리 화강암의 거칠면서도 깊은 맛은 없었다. 인정문은 창덕궁의 법전이다. 그런데 인정전 안에서 왕의 위용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곳에 너절하게 달려있는 일본식 전등과 바닥에 깔려있는 마루 때문이었다. 인정문에 걸맞은 조명과 온기와 사람들을 배설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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