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역전된 입지 - 인식의 차이가 격차를 만들다.
- 최초 등록일
- 2007.05.30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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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리포트는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동아시아의 개혁과 혁명>이란 역사수업을 들으면서
과제로 제출한 것입니다. 중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수천년 잡아오다가 근대화시기에 이르러
인식의 차이로 인해 일본에서 그 패자 자리를 넘겨준 것에 착안해 근대화에 대한 인식이 두 나라의 상황을 180도 뒤바꾸어 놓았음을 지적하고 분석한 리포트입니다. 중국의 아편전쟁과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비교하여 근대화차이가 필요하신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ⅰ. (서론)
아편전쟁 이전의 국가와 사회
ⅱ. (본론)
1840년 아편전쟁 전 , 후의 중국
1) 1840년 이전
2) 1840년의 상황
3) 1840년 1, 2차 아편전쟁 후의 상황
중국의 대응
1840년 아편전쟁 전, 후의 일본
1) 일본의 상황
2) 일본의 식민지화 위기
일본의 대응
: 메이지유신 (明治維新) - 일본, 군국주의의 싹을 틔우다.
중국과의 비교 : 양무운동과 무술변법
일본의 결과
ⅲ. (결론)
맺음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Ⅱ. 서론
명실 공히 중국은 동아시아의 패자였다. 그리고 더 넓게는 아시아의 맹주였다. 아직까지 아시아는 한자문화권에 속하며 유교를 국교로 숭상해온 것이 그 증거이다. 해마다 진상품을 중국의 황제에 바쳐 예를 행하였고, 나라의 세자를 세울 때도 책봉을 받아야만 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대다수의 아시아국가가 중국에 귀속되어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군림할 수 있는 나라는 자신의 나라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중국은 그러나 1840년의 아편전쟁으로 인해 그 생각이 틀렸음을 의심받게 된다. 중국의 문명은 상대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중국을 위협하고 처절히 유린하였기 때문이다. 시작으로, 아편전쟁 이전의 국가와 사회를 살펴보겠다.
이렇게 중국이 입지를 잃어가고 있을 때 동아시아의 구석진 섬나라 일본이 그동안 숙여왔던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1894~95년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중국을 청일전쟁에서 이기고, 당시 막강한 국력의 러시아조차 1904~05년에 전쟁에 승리하여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서구 열강과 같은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조선을 식민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인다. 그렇기에 일본이 중국과의 종속관계를 한 순간에 뒤바꿀 수 있었는지를 알기위해서는 1840년 아편전쟁이라는 일이 일어난 시점의 앞뒤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제부터 그 시기의 중국과 일본이 처한 구체적인 1840년대 전후의 시대적 상황과 그런 상황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대응방식을 알아보고 두 나라를 비교하여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 책
① 신승하, 『근대중국: 개혁과 혁명 - 중화제국의 마지막 왕조의 몰락(上)(下)』, 대명출판사, 2004.
② 진순신, 서석연(역), 『아편전쟁』, 우리터, 1997.
③ 나가이 미치오, M.우르타이 (엮음), 서병국 (옮김), 『세계사의 흐름으로 본 명치유신 - 유럽화를 꿈꾼 섬나라 일본』, (주)교문사, 1994.
- 영화
① 에드워드 즈윅,『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 2003.
② 서극,『황비홍2 - 남아당자강(Once Upon A Time In ChinaⅡ)』, 1992.
- 홈페이지
① http://100.naver.com/100.php?id=106094
② http://tab.search.daum.net/dsa/search?w=dic&oldw=dic&sw=dic&q=%B8%DE%C0%CC%C1%F6%C0%AF%BD%C5&pagew=1024px&pageP=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