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 <만분가>
- 최초 등록일
- 2007.11.21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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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위의 <만분가>에 대한 작품론입니다.책을 보고 직접 작성하였으며,
원문은 책을 스캔해서 사용했습니다.a+ 받은 과목이라 당당히 권해드립니다.
목차
1. 序 論
2. 本 論
Ⅰ. 작자 조위(曺偉)
Ⅱ. 유배가사로서의 <만분가>
Ⅲ. 원문과 해석
Ⅳ. 형식 및 내용의 특징
Ⅴ. 조위의 <만분가>와 송강 정철의 가사
3. 結 論
본문내용
1. 序 論
<만분가>는 안정복의 『잡동산이』43책에 조위의 작품으로 명기되어 전하는 유배가사이다. 지은이 조위(曺偉)가 무오 사화(戊午士禍; 1498) 때 유배지인 전라도 순천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비분(悲憤)을 옥황(玉皇; 여기서는 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편 것으로, 마치 초나라의 굴 원이 천문을 지어 그의 안타깝고 원통함을 풀려던 것과 같았으니, 이조 유배가사의 효시가 된다.
2. 本 論
Ⅰ. 작자 조위(1454~1503)
조위의 호는 매계이며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자 처남이다. 성종 때 호조참판에 이르렀고, <두시언해>, <점필재문집> 등의 편찬과 간행을 맡아 성종의 총애를 받았고, 연산군 때 <성종실록>의 편찬을 도왔다. 그러나 그 뒤 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를 만나, 점필재 계통의 학자들을 학살하고 유배할 때에 하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는 길에 의주로 귀양갔다가 다시 전라도 순천으로 이배되어 약 5년간의 유배생활 끝에 병사하였다.
만분가는 이러한 유배지에서의 소회를 술회한, 124행에 이르는 장편 서정가사이다.
본관 창녕(昌寧). 자 태허(太虛). 호 매계(梅溪). 시호 문장(文莊).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檢閱)이 되고 1476년부터 사가독서한 뒤 1479년 영안도경차관(永安道敬差官)이 되었다. 수차에 걸쳐 시제(詩製)에서 장원하여 명성을 떨쳐, 성종의 총애를 받아 경연에 나갔다. 1485년 함양군수로 나가 선정하여, 표리(表裏) ·녹비[鹿皮] 등을 하사받았다. 그 후 도승지(都承旨) ·호조참판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495년(연산군 1) 대사성(大司成)으로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가 되어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사관(史官) 김일손(金馹孫)이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수록하여 올리자 그대로 편찬케 하였다.
후에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로 부총관(副摠管)을 겸직했고, 1498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오는 도중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나 의주에서 피체되어 투옥되었으나 이극균(李克均)의 극간으로 의주에 장류(杖流)되어 순천에서 죽었다.
참고 자료
<한국가사선집>, 이상보, 집문당, 1984
<한국고전시가작품론2>, 정병욱, 집문당, 1992
<한국 이별시가의 전통>, 박춘우, 도서출판 역락, 2004
<한국 가사문학의 연구>, 이상보, 형설출판사, 1983
<가사문학론>, 최강현, 세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