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민족운동
- 최초 등록일
- 2007.12.25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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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20년대의 민족운동 :
- 민족주의 우파의 실력양성운동
- 국내외의 공산주의 운동
-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전개
- 해외의 민족해방운동
목차
1. 부르주아지의 민족운동
(1) 문화운동(실력양성운동)의 논리
(2) 문화운동
(3)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분열
2. 국내의 사회주의 운동과 조선공산당의 결성, 해체
(1) 식민지하 농민·노동운동의 발전
(2) 사회주의이념의 수용과 확산
(3)조선공산당의 조직과 활동
3.민족협동전선운동과 신간회
(1)민족협동전선론의 발전과 공산당의 협동전선운동
(2)민족주의 좌파의 형성
(3)신간회의 결성과 활동
4. 만주지역의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운동
(1) 1920년대 중반의 3부의 성립과 활동
(2) 사회주의운동의 발생과 성장
(3) 민족유일당 운동의 전개
(4) 1920년대 후반 - 30년대 초반 만주지역 민족해방운동의 재편
본문내용
1. 부르주아지의 민족운동
(1) 문화운동(실력양성운동)의 논리
- 3·1운동 이후 각종 외교운동- 1919 파리강화회의, 1921 워싱턴회의, 1922 태평양회의 등 -의 좌절과 조선총독부의 산업정책 등이 문화운동이 대두된 배경
“조선독립은 당분간 절망적이므로 우리들 조선인은 힘써 교육·산업과 문화적 시설에 열중하여 실력양성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열강) 모두가 입으로는 정의 인도를 부르짖지만 약소국과 그 민족은 항상 발전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태평양회의에 대한 김동성-동아일보 기자, 태평양회의 참관-의 소감)
- ①신문화건설 · 실력양성론 :
· 세계는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정의 인도’ ‘자유 평등’의 시대, 물질적 측면에서는 ‘진보된 문명’의 시대로 ‘개조’된다고 인식. 세계개조의 대세에 순응하여 조선에서도 신문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조선은 그 존재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신문화건설론’
· 세계가 정의·인도의 원칙보다는 ‘생존경쟁의 원칙’ 위에서 움직인다고 보고, 사회진화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문명의 수립’을 지향한 것이 ‘실력양성운동’ 1922년 이후 실력양성론은 문화운동의 중심적 이론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음.
②정신개조 · 민족성개조론 :
· 1920년대 초반 ‘문화운동론’의 또 다른 주요한 논리는 ‘정신개조 · 민족성개조론’
· 1910년대에 걸쳐 일본인들은 한국민족 열등성론을 주장해 왔고, 조선인 신지식층도 폐습개혁을 주장해 왔는데 이러한 주장들과 1920년을 전후해 소개된 민족심리학이 결합되면서 1922년경에 ‘민족성 개조론’으로 발전함.
· 김기전, 현상윤, 이광수 등이 <개벽>지를 중심으로 민족성개조론을 주장함. 명예심, 권리심, 당쟁심, 배금열, 금일주의, 개인주의, 불성실, 허위, 공상 등등을 개조할 민족성으로 거론.
참고 자료
없음